-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69
CA1341. 스탠리 큐브릭,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1971)
신처럼 떠받들던 베토벤의 음악이 악몽이 된 것은 고문 때문이다. 그러나 고문이란 얼마나 가공할 만한 ‘데미지’요 ‘트라우마’인가.
CA1342. 토니 스콧, 〈트루 로맨스〉(1993)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감정 없이 ‘콜걸이 자기 포주를 죽인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나는 이야기’라고 규정하면 그야말로 ‘펄프 픽션(싸구려 삼류 소설)’이 된다. 하지만 제목이 ‘트루 로맨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건 ‘진짜’ 사랑 이야기니까. 너무나 진짜라서 피 냄새가 날 지경인.
CA1343. 리들리 스콧, 〈델마와 루이스〉(1991)
흔히 선택의 기로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은 보는 이를 갑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놀랍다.
CA1344. 볼프강 페터센, 〈에어 포스 원〉(1997)
위기에 처한 대통령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기도(企圖)를 완벽하게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국력, 또는 위기관리 능력을 만천하에 과시하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 영화. 이런 선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의 방증에 지나지 않는다. 한 세대나 지난 지금(2026년!)의 시점에서는 더더욱. 미국은 ‘덕성’을 잃어버렸다. 언제는 있었느냐는 반문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CA1345. 삐에르 빠올로 빠졸리니, 〈살로, 소돔의 120일〉(1975)
영화의 끝. 다만 이것이 악몽이기를 바랄 뿐. 어떻게든, 언젠가는 반드시 깨어날. 세상에 깨어나지 않는 악몽은 없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