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_씨 #깨달음
내가 호구라는 걸 깨달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아니 어쩌면 난 미리 알고 있었는데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내심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며 계산도 잘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일까?
호구임을 인정하는 그 순간의 충격이 상당했다.
어느 날 나에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을 누군가는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대처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상당한 돈과 시간을 썼고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난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지난날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마치 '네가 언젠간 다시 알아봐 주길 바랬어'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는 호구다'라고.
생각해보면 그저 조금 잘 믿었을 뿐인데.
그저 조금 거절을 못하고, 그저 조금 상처주기 싫어하고, 그저 조금 순진했을 뿐인데.
나는 어느 순간 호구가 되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A 씨는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허술하구나? 그런 걸 왜 속니? 그럴 땐 이렇게 했어야지"
라며 나를 질타했다.
또 다른 B 씨는
"와 뭔가 되게 웃기네. 무슨 그런 일이 다 있냐."
라며 신기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k 씨는
"헐 그 사람 진짜 나쁘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말 잘 못하는데..."
라고 공감하며 자신이 겪은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k 씨'들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듣다 보면 스스로가 호구라고 인정하던 그 충격이 점차 사라져 간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다.
나만 호구라서 이렇게 억울한 일이 많은 게 아니다. 누구나 다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수 있는 일들. 그냥 그런 것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