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후반에 만난 위로

재즈

by 헤비스톤

오랫동안 음악을 들어왔다. 중학교 1학년 때,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에 빠져들면서 음악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이다.

이십 대에는 대학가요제 노래와 그룹사운드 음악을 즐겨 들었고, 삼십 대 이후에는 클래식과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넓혀갔다. 때로는 시대별, 가수별로 국내 음악을 찾아 들으며 그 흐름을 이해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음악을 들어왔음에도, 유독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장르가 있었다. 바로 재즈였다. 몇몇 유명한 곡은 알았지만, 낯설고 어려운 음악처럼 느껴졌다.


주말이면 산에 오르는 나는, 하산길에 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사십 대 초반 어느 날, 올드 팝을 자주 듣던 음악 방송에서 우연히 재즈 한 곡이 흘러나왔다. 순간, 가슴에 따뜻한 울림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재즈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생겨 재즈에 관한 책을 읽고, 유명한 곡들을 하나씩 찾아서 들었다. 울산의 재즈카페 ‘비밥’, 대구의 재즈카페 ‘올드 블루’, 그리고 '재즈 페스티벌'에도 여러 번 찾아가 라이브 공연을 즐겼다.


오십 대에 들어 출장으로 해외를 자주 다니게 되면서, 재즈는 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머무는 도시마다 이름 있는 재즈 클럽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밤을 기억 속에 새겼다.

프라하의 <레두타> 재즈클럽에서는 좋아하는 흑맥주시며, 역사 깊은 무대 위의 열정적인 연주를 가까이에서 즐겼다. 벽에 걸린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사진은 공간 자체를 음악의 박물관처럼 느끼게 했다.


비엔나의 <재즈랜드>는 오래된 와인 저장고를 개조한 곳이었다. 벽돌 아치 천장과 아늑한 조명 아래에서 들은 재즈는 공간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선사했다.


이스탄불의 <나르디스> 재즈클럽에서는 다이애나 크롤을 빼닮은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골목길을 지나 찾아간 작은 클럽에서 만난 그 목소리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재즈켈러>에서는 젊은 밴드의 빠른 연주에 맥주와 모히토를 곁들이며 활기찬 밤을 보냈다. 도시의 낯선 공기가 오히려 음악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요즘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울산 근교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을 자주 찾아다니고, 울산 중구 문화의 전당 기획공연 ‘재즈 오디세이’도 놓치지 않는다. 일상이 음악으로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는 순간들이다.


돌이켜보면 음악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재즈를 만나고서는 음악 취향을 넘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위로의 영역이 넓혀졌음을 알았다.

즉흥 속에 담긴 자유로움, 불완전함마저 끌어안는 포용력, 그리고 말 없는 대화 같은 선율. 그 속에서 나는 삶의 위로를 얻는다.

이제 재즈는 ‘듣는 음악’에서 든든한 '벗'이 되었다.

이제 거실로 나가 기분 업 시킬 때 자주 듣는 'Take five'를 들어야겠다.




<재즈 입문에 도움을 준 책>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대 커튼이 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