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신호등 앞에 서면 우리는 대개 기계적인 기다림에 익숙해진다.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뀌는 순간, 횡단보도라는 정해진 궤도에 몸을 맡기는 것은 의지라기보다 관성에 가깝다. 하지만 그날, 길 건너편 인도에 뼈가 부러진 채 뒤집혀 있는 우산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 나의 '건너감'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선 선택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 관성을 거스르는 의지의 개입 〉
나는 신호가 바뀌면 길을 건널 것이다. 그것은 우산의 존재와 상관없이 예정된 일이다. 그러나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그 망가진 우산을 향해 손을 뻗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삶에서 진정한 의미의 시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신호에 맞춰 발을 뗐느냐가 아니라, 그 길 끝에서 내가 무엇을 목격하고 어떤 행위를 시작하느냐가 본질이다. 타인의 아픔이나 방치된 무언가를 나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나는 비로소 관성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의 행위자가 된다.
〈 세계를 재구성하는 마음의 힘 〉
우리는 흔히 환경이 나를 결정한다고 믿지만, 사실 풍경을 지우는 것도 다시 그려 넣는 것도 결국 나의 마음이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건너온 곳과 건너갈 곳의 풍경을 똑같이 지워버릴 수도 있다."
이 서늘한 통찰은 마음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보여준다. 과거(건너온 곳)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건너갈 곳)에 대한 불안이 마음을 잠식하면, 지금 내 눈앞의 세계는 무의미하게 소멸한다. 반대로 마음을 바로 세우면, 그저 버려진 고철에 불과했던 우산은 나의 연민과 연결되어 새로운 서사로 다시 태어난다.
〈 시작의 본질: 몸과 마음의 발원지 〉
결국 삶은 매 순간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의 본질은 외부의 자극이나 타인의 권유가 아닌, 바로 나의 몸과 마음이 발원지(發源地)가 되는 것이다.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고여버리고, 마음 없이 움직이는 몸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신호등 앞에서의 짧은 찰나, 내가 우산을 집어 들기로 마음먹고 근육을 움직여 몸을 숙이는 그 연쇄적인 작용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비로소 선명해진다.
우리는 늘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거창한 계기를 기다리곤 한다.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우리 내부에서 솟아나는 작은 샘물과 같다. 길가에 버려진 우산 하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실천으로 옮기려는 찰나의 결단. 그 발원지에서부터 우리의 진짜 삶은 매일 아침 다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