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상처 위로 투박한 가시를 덧대는 오랜 침묵의 작업이다. 살다 보면 불현듯 사람에게 데이는 날이 있다. 믿음이 깊었던 만큼 화상은 깊고, 그 자리에 엉겨 붙은 흉터는 이내 딱딱한 냉소가 되어 마음의 문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흔히 그 거친 껍데기를 나의 바뀐 성격이라 믿거나, 그 단단함만이 나를 보호할 유일한 갑옷이라 의탁하며 생을 보낸다.
그러나 딱지는 결코 존재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침입자에 대항해 세워진 임시 바리케이드일 뿐, 우리의 진실한 형상은 그 폐쇄된 어둠 속에서 숨죽여 차오르는 분홍빛 ‘속살’에 있다.
이 고요한 복원의 공정 속에서 망각은 비로소 숭고한 이름을 얻는다. 여기서의 망각은 단순히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지워버리는 수동적인 망실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라는 외피 너머에 온전한 내가 여전히 실존함을 의심치 않는 ‘강력한 믿음의 행위다. 배신의 통증보다 내 안의 회복력이 더 우월함을 신뢰하는 것, 아직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은 새살의 기척을 미리 감각하고 그것이 곧 현시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람의 실상’인 것이다.
망각은 비겁한 회피가 아니라, 본모습을 회복하겠다는 영혼의 결단이다. “나는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신념이 안쪽에서부터 뜨겁게 고일 때, 한때 나를 규정하던 과거의 흉터들은 소임을 다하고 마른 잎처럼 바스러진다. 믿음이 충분히 차오르지 못한 자는 결코 제 손으로 딱지를 밀어낼 수 없다. 오직 망각이라는 확신을 통과한 자만이 아픔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 있는 법이다.
딱지가 떨어진 자리에 서린 투명한 광채를 보라. 그것은 망각이라는 신뢰가 빚어낸 눈부신 승전보다. 과거를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생명력을 더 깊이 사랑하기에 기꺼이 어제를 놓아주는 일. 그 믿음의 망각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상처의 외피를 벗고,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강인한 나의 진짜 얼굴을 비로소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