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난세 보고서 18

3부: 몸의 가난세 - 사회 시스템이 부과하는 고통 2

by 일선

예방의 문턱에서 좌절하다

질병 관리의 첫걸음은 예방과 조기 발견이다. 하지만 이런 가장 효율적인 건강 관리 시스템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가장 먼저 닫혀 있다. 한국은 전 국민 건강검진 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왜 가난한 이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건강검진조차 받지 못하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4년간(2020~2024년)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건강이 어떻게 방치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수급자의 거의 절반(48.8%)이 4년 동안 단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이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미수검 비율(28.1%)보다 20% 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노동 연령층인 30대 의료급여 수급자의 미수검률은 55.8%에 달했다.


국가암검진의 격차는 더 심각하다. 2023년 기준 위암 검진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자는 약 70%가 수검했다. 하지만 의료급여 수급자는 41.8%에 불과했다. 무려 28.2% 포인트의 격차다. 자궁경부암(29.3% 포인트 격차), 간암(28.1% 포인트 격차) 등 모든 주요 암종에서 저소득층은 조기 발견의 기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결정적인 건 시간의 부족이다. 비정규직, 일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놓인 저소득층에게 하루를 쉰다는 것은 곧 그날의 소득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유급 병가는 이들에게 적용되기 어렵다. 건강검진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몇 시간의 기회비용은 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막대한 비용이다. '아플 시간도 없다'는 저소득층의 자조는 사회 시스템이 강요한 잔인한 현실이다.


돈의 공포

금전적 제약 역시 예방을 가로막는 중요 요인이다. 저소득층은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이 발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를 '발견의 공포'라고 한다. 질병의 발견은 막대한 치료비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장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미래의 치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차라리 모르는 상태로 남기를 선택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건강검진 과정에서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할 경우 발생하는 비급여 비용도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저소득층에게 큰 부담이 된다. 사회 시스템이 제공하는 사회 안전망이 충분히 신뢰를 주지 못할 때, 예방은 사치가 되고 회피는 생존 전략이 된다.


예방의 실패는 필연적으로 질병의 방치와 악화로 이어진다. 저소득층은 몸에 이상 신호가 와도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조기에 발견했다면 쉽게 치료할 수 있었던 질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으로 악화하기 쉽다.


특히 암과 같은 중증 질환에서 치명적이다. 낮은 암 검진 수검률은 필연적으로 늦은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는 생존율의 격차로 직결된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관련 자료를 보면 모든 암 종에서 의료급여 수급권자(저소득층)의 5년 관찰 생존율은 건강보험 가입자 대비 현저히 낮았다.


위암의 경우 의료급여 환자의 생존율이 건강보험 환자보다 22.7% 포인트 낮았다. 대장암은 20.4% 포인트 낮았다. 특히 예후가 나쁜 간암은 27.2% 포인트나 생존율이 낮았다. 소득 최상위층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더 극단적이다. 간암의 경우 상위층 대비 하위층의 생존율 격차는 38.3%에 달했다. 위암은 27.6% 차이가 났다.


치료 과정에서도 불평등은 계속된다. 중증 질환일수록 최신 설비와 숙련된 전문 인력이 있는 대형 병원에서 치료가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가난한 환자들이 이런 기회에서 배제되고 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대형 3차 병원에 입원한 암 환자 비율이 소득 최상위층에서는 73%였다. 반면 의료급여 환자의 경우는 불과 10.1%만이 3차 전문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경제적 이유와 접근성의 제약으로 저소득층 환자들은 최적의 치료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평소에 적절한 예방과 초기 치료, 만성 질환 관리를 받지 못한 저소득층은 결국 응급 상황에 부닥쳐서야 병원을 찾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당뇨발 절단 위험 증가(5.13배)와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나타난다. 사회 시스템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비싸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아파도 참는다

질병이 심각해진 후에야 병원을 찾게 된 저소득층은 또 다른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다. 막대한 치료비 부담이다. 이는 결국 치료를 포기하게 만들거나, 가계를 완전히 파탄시키는 '재난적 의료비'의 덫으로 이어진다.


'미충족 의료 경험률'은 병원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한 경험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 역시 저소득층에게 집중돼 있다. 2023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진료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한 이들의 특징은 명확했다. 응답자의 57.5%가 무직 상태였다. 월 가구소득 100만 원 미만이 35.3%였다. 또한 독거(30.9%)나 사회적 고립(39.4%)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 결합해 의료 이용을 가로막고 있다. 미충족 의료의 주된 이유는 압도적으로 '경제적 이유'다.


가계 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재난적 의료비'는 저소득층을 빈곤의 덫으로 몰아넣는 핵심 원인이다. 2022년 관련 통계를 보면 소득 최하위 20% 가구의 12.39%가 재난적 의료비 지출을 경험했다. 반면 최고소득 20% 가구에서는 단 0.93%만이 그런 경험이 있었다. 빈곤층은 부유층보다 의료비로 인해 가계가 파탄 날 위험이 1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이는 '메디컬 푸어(Medical Poor)', 즉 질병 치료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계층을 양산한다. 과거 조사에 따르면 과도한 의료비 때문에 매년 약 70만 명이 새로운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축을 깨고, 집을 팔고, 결국 고금리 대출(금융 가난세)에 손을 대거나 심지어 사채까지 쓰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의료비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가계를 파괴하고 빈곤을 심화시키는 폭탄이 될 수 있다.


간병과 소득 상실의 이중고

치료 포기를 결정하는 더 큰 요인은 의료비 자체보다 '보이지 않는 비용'에 있다. 간병 부담과 소득 상실이다. 환자가 치료받는 동안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가계 소득은 급감한다. 동시에 가족 중 누군가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포기해야 한다.


저소득층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이중고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간병비는 막대한 부담이다. 간병인을 고용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가족이 직접 간병을 떠안아야 한다. 이는 '간병 파산'으로 이어진다. 사회 시스템은 질병의 비용뿐만 아니라, 돌봄의 책임까지 개인과 가족에게 잔인하게 전가하고 있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이나 '워킹 푸어'는 공공 부조의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이런 부담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가장 가혹한 상황에 처한다.


건강 박탈이 다시 빈곤을 강화하다

'몸의 가난세'는 단순히 건강을 해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금전적 빈곤을 강화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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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도는 건강 불평등이 단순한 의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건강의 악화는 노동 능력 상실로 이어져 빈곤 탈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다시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


글로벌 건강 불평등

건강 불평등과 몸의 가난세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각국의 의료 시스템은 다르지만, 빈곤이 건강을 파괴하는 메커니즘은 보편적으로 작동한다.


미국의 '메디컬 뱅크럽시(Medical Bankruptcy)'

의료 민영화가 극심한 미국은 몸의 가난세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다. 막대한 의료비 부담은 개인 파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층은 아예 의료 서비스에 접근조차 하기 어렵다. 이는 금전적 빈곤이 건강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시스템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영국의 '대기 시간세(Waiting Time Tax)'

영국은 무상 의료 시스템(NHS)을 운영한다. 하지만, 심각한 의료 인력 부족과 예산 문제로 긴 대기 시간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의를 만나거나 수술받기 위해 몇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특히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치명적이다. 기다리는 동안 질병은 악화하고, 고통은 가중된다. 이는 의료비 대신 '시간'을 지불해야 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가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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