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난세 보고서 4

프롤로그 4

by 일선

5. 한국 사회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혹자는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 결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더 열심히 일해서 신용등급을 올리고, 돈을 모아 도심으로 이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주장이 얼마나 공허하고 기만적인지를 데이터로 반박하려고 한다.


가난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이는 각 경제 주체들이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다. 금융 기관은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임대인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통 업체는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인 합리성이 모였을 때, 그 결과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다. 한국 사회 시스템은 ‘평균적인’ 시민을 상정하고 설계됐다. 이 평균에서 벗어난 취약 계층에게 모든 비효율과 비용이 전가된다.


글로벌 가난세 보고서: 보편성과 특수성


가난세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빈곤 프리미엄(Poverty Premium)’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영국의 관련 보고서들은 저소득층이 보험료를 월납할 때 할증료를 내거나, 선불 에너지 요금제를 사용하면서 더 비싼 단가를 지불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미국에서는 ‘페이데이 론(Payday Loan)’이 대표적인 가난세로 지목된다. 이는 급여일에 맞춰 소액을 빌려주는 초단기 대출이다. 수수료를 연 환산 이자율(APR)로 계산하면 무려 400%에 육박한다. 이는 소액, 급전의 높은 단가라는 가난세의 공통 메커니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이런 글로벌 사례와 한국의 상황을 비교 분석할 것이다. 가난세의 보편성과 함께 한국적 특수성을 규명할 것이다. 한국의 압축적인 경제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주거 환경(전세 제도와 고시원의 확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극심한 공간 불평등이 어떻게 한국형 가난세를 만들어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6. 시스템의 세금 고지서를 거부하며


왜 우리는 이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가? 가난세는 단순히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가난한 이에게 과도한 비용과 시간을 부과하는 사회는 결코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필자의 목표는 명확하다. 첫째, 보이지 않는 가난세의 실체를 데이터로 드러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이다. 둘째, 가난이 개인의 실패가 아닌 시스템의 결과임을 증명한다. 빈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셋째,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리미엄 제거 장치’를 제안할 것이다. 예를 들어, 보증부 월세 전환율 상한을 표준화하고, 단위가격 표기 의무를 강화하며, 통근 시간 정보를 주거정책에 반영하는 등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이 보고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할 것이다.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저렴한 금리, 쾌적한 주거 환경, 짧은 통근 시간이 어쩌면 누군가가 대신 납부하고 있는 가난세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대로, 당신이 지금 감내하고 있는 과도한 비용과 시간의 압박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이 부과한 부당한 세금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 시스템이 우리에게 보낸 이 은밀하고도 폭력적인 세금 고지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이다. 이 고지서에 적힌 내역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 시스템이 착취한 온 수많은 ‘시간 빈곤층’과 ‘가난세 납부자’들을 위한 변론서다. 한국 사회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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