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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ji berry Apr 02. 2022

왜 너는 기자해?

수습기자의 하루를 기록합니다.


IV.  불가근 불가원[ 不可近不可遠 ] 



불가근불가원

1. 요약.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어려움

가까이 하기도 어렵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관계가 있다. 바로 그런 상대를 가리킬 때 쓰는 말.

흔히 기자들 사이에서는 취재원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된다.


"결과는 빛났고, 과정은 아름다웠다"

.

.

.

요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유행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백이진(남주혁)은 펜싱선수인 나희도(김태리)와 청춘의 그 시절 처음 만나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사랑했다. 아마 누구나 학창시절 한 번쯤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웃고 울어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유독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백이진의 기자로써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게 쏠쏠했기 때문이다.(물론 현실에서는 남주혁이 없을뿐 아니라, 집회 시위 현장에서 첫 사랑을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feat. PTSD)


"그따위로 마음을 담아 말하면 안 되거든, 기자는"


나희도가 자신의 경기를 예쁘게 표현해준 백이진에게 고마워하자 백이진이 혼란스러워 하며 내뱉은 말이다.  말은 내뱉는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일로써 취재원과의 유대를 평생 쌓을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혹여나 내가 일로 다가갔던 부분이 취재원에게 둘도 없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취재원과의 거리는 어느정도좋을까. 기자는 어디까지 개입해도 괜찮을까?  정도를 몰라 한참을 고민했던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었다.   


         (불법 도박장을 제보한 취재원과 나눈 문자)

   


"캡,  불법도박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 취재원 만나고 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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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리진 않겠는데, 그냥 킬하는게 어떨까"   


끝날 것 같지 않던 수습이 끝나고 사건팀으로 정식 배치를 받고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메일을 확인하던 중에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과거에 불법 도박장으로 적발이 된 곳에서 코로나19로 감시가 줄어들자 또 영업을 재개했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읽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려 터질 것 같았다. 아! 단독이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캡에게 바로 보고  들떴던 마음은 이내 가라 앉았다. 이유는 바로 캡이 제보자의 신상이 불분명 하다는 이유로 내게 킬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의욕이 앞섰던 나는 제보자를 경찰서  카페에서 만나겠다고 굳이 캡을 설득하며 기어코 만나고 오겠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나는 '단독' 눈이 멀었던 나머지 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보자를 만났다.


"저한테 얘기해주신거 그대로 민원실 가서 고발장 접수 하시면 돼요"


민원실 앞까지 제보자를 배웅해주고 돌아섰던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제보자는 불법도박으로 돈을 잃었던 조선족으로 도박장을 수차례 신고했지만 적발되지 않자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인근 파출소와 내통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그의 얘기에 나는 경찰서에 직접 고발장을 접수하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경찰서 민원실 앞에서 그를 들여보낸 뒤 전화가 울렸다. 캡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선배, 뭔가 잘못된  같습니다. 제가 사건을 만들어   같아요. 방관자가 아니였어요. "


"맞아, 결국 넌 방관자가 아니었고 심지어 고발 사주까지 했던거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내가 단독에 눈이 멀어 결국 취재원과의 거리 유지에 실패했구나. 난 결코 기자로써 방관자가 아니었구나 말이다. 제보자를 만나고 오겠다는 말에 캡이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선배로서 후배의 방패막이 되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후배 기자 스스로 실수를 통해 깨닫게 하는 것. 그뿐이었다. 나긋나긋한 캡의 조언에 울컥해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혹여나 내가 한 실수가 선배나 회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와 더불어 나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기 떄문이다.


이렇듯 기자로써 취재원과의 거리유지는 매순간 고민해야하는 일이며,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너무나 어렵다. 드라마 속 백이진이 혹여나 자신이 일을 하다 취재원이자 사랑하는 사람인 나희도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내게 더 크게 와닿는 건 바로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이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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