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나지않는 무수히 많은 인연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친구들이 학년마다 생겨나고, 학년이 바뀌면서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끈끈한 우정으로 연결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관계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맺어진 친구들 사이도 학교를 다르게 배정받거나 사회생활을 하게되면서는 또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그게 당연한 듯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마음의 결핍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도 조금씩 정리라는 것이 필요하게 되고, 리셋이라는 의미가 붙여지기도 한다.
10여년 이상을 알고 지내면서도, 1년에 안부한번 묻는 일이 연중 행사처럼 되어지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었다. 각자의 사정들이 생기기 전에는 자주 만나 술잔도 기울이고 전화통화도 심심치 않게 하면서 일상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며 경조사를 챙기던 사람들이 연애를 하게되고, 가정을 갖게되고 일이 바빠지면서 어울리는 삶 보다는 내 일상에 집중하는 일이 더 많이지고, 그 시간들이 길어져갔다.
신기하게도 내 주변 내가 믿었던 '내사람'들이라 생각한 사람들도 정작 내가 잘되어있고, 내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내가 먼저 안부라도 묻는 전화를 해야 연결이 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나는 힘든 일을 겪으면서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내가 먼저 모든 인간관계를 잠시 멀리하자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연락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혼자 지내온 시간들이 길어지며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듯 했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그림이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싸-악 정리가 되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어쩌다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반갑고 미안한듯 약간의 호들갑을 더해 긴 안부를 물었다.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하자니 하나같이 똑같은 부탁으로 순간에는 너무나도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말을 이어갔다. 글을 쓰는 일을 했다는 이유가 이들과의 연결고리가 그나마도 이어져 있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게 할 정도로
기획안을 부탁하거나, 급하게 촬영구성안을 써달라거나, 개인적인 소송을 글로 써서 내는 일을 부탁한다거나 라디오에 사연을 써서 프로포즈를 한다고 여자친구에게 자신을 빙의해 편지를 써달라거나, 새로운 사업을 해 볼 참인데 홈페이지에 어울릴만한 문구를 써달라는 일 들이었다. 하나같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지금 적으면서 그 당시의 통화내용을 생각하니 너무 웃음이 난다.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 사람들이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고마운 일이라고?
부탁을 거절하지못해 글을 써주면서도 내가 지금 이런거나 써주려고 글쓰는 일을 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마음보다는 그래, 이걸 끝으로 내가 너와의 인연을 정리한다고 생각한다..하는 마음이었던 것같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쓰는 일을 부탁할 수 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니 충분히 해 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걸로 그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내가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작정하고 정리하지 않아도 저절로 정리가 됐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무언가를 베푼 것에 대한 댓가가 아닌 그래도 어느 때이건 한번씩은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이어가는 관계가 더이상은 아니구나 하는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라는 것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지난해에서 올 해로 넘어오는 시기에 나는 새해 인사를 생략했다.
예전같으면 답장에 대한 기대 없이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히 새해 덕담을 나누고 새해 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그마저도 참 의미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그냥 다 내려놓게 되었던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를 더 챙기는 관계이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었던 것처럼, 각자의 삶에 봉착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요즘이라 그렇겠지 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어쩌면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맺어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그 공을 들인 의미가 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상대방 모습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내가 그려놓은 모습에 상대방을 맞추려는데 맞지 않는 옷을 입혀놓은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