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답안지를 새로 쓰고 싶다
불혹. 인생의 전반기라는 기준이 보통은 불혹이라고들 많이 한다. 물론, 30대까지의 철부지 생각과 행동은 이제 그만 접고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돋움을 준비하는 시기 40.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데 나이가 주는 그 때마다의 무게감은 실로 거부할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생에서의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무엇일까를 요 근래 자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 있고 없음을 실패와 성공으로 구분짓는 것일까, 아니면 직업을 갖고 못갖고를 실패와 성공으로 나누는 것일까 그마저도 아니면 결혼을 하고 하지않고를 나누는 것을 말할까. 여러가지 기준을 들이대고 실패일까, 성공일까를 견주어보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넘어지기도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가던길이 아니면 돌아 가기도 하고 그런것이지.
어떻게 성공으로 가는 인생의 직진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성공이라는 것은 요즘 시대에 곧 돈으로 연결되었다. 삼시세끼 굶지않고, 때마다 옷 한벌씩 해 입을 수 있고 비상시에 돈을 융통할 수 있을 정도면 되지 얼마나 삐까번쩍하게 살아간다고 돈이라는 것을 쟁여둬야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가끔은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잊어버리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치여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를 반문하게 되었다.
얼마나 산다고 이렇게 숨막히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만큼 답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일을 10년전의 나였다면, 20년전의 나였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무한질주였는데 지금의 나를 옭아메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다보니 그 이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숨통을 조여왔다.
내 인생에 정말 힘든 순간들을 보면 한창 내가 잘 나갈때 곁에 있어주던 사람들이 내가 힘든 순간에는 각자의 삶에 충실하느라 옆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물론 그들에게 나의 힘듦을 알아달라 했던 것은 아니지만 힘든일과 더불어 인간관계마저 리셋이 되니 그것만큼 정말 아. 시간낭비였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주저하다 한번씩 좋은일, 기쁜일이 아닌 부모의 부고를 알려오고 가족의 부고를 전해오는 지인들을 보면서 나는 같이 위로를 건네기보다 마음이 삐뚤어져가며 그래서 어쩌라고? 부의금이라도 내라는건가? 하는 못된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상황이, 환경이 사람의 마음까지 이렇게 옹졸하게 좁혀지게 하는구나 라며 그런 내 마음을 정당화 시킨적도 비일비재 했다.
결혼의 실패라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 잣대를 인생의 실패에 견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사이에서 행복하지않았던 결혼생활을 정리한 것이 인생의 실패라는 낙오자로 각인시켜 버린 것이다.
기쁜일에만 함께 하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함께 해 줄 수 있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물론 실패라는 것이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그냥 걸어가다 돌에 걸려 넘어지는 일처럼 그런 일.
한번쯤 넘어지고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순간인 것이다.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혀를 끌끌 차며 이제는 어쩌냐고 나의 계획을 듣고 싶어하듯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인생에는 성공만이 있을까? 조금도 상처 없이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되묻고 싶어졌다.
나는 그들과 같은 삼류로 살고 싶지않다.
허물고 가야 하는 벽이 있다면 기꺼이 허물어주고, 부셔야 하는 장애물이 있다면 기꺼이 부셔가면서
그냥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늘 다짐은 했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를 악 물게 되었다.
실패를 즐길 수 없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다. 힘들때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일류로 살아남고 싶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