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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Mar 04. 2023

우수수 내뱉는 말들의 건축,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우리가 해방일지를 보고 우는 이유


나의 해방일지에 관하여




집의 불을 모두 끄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초여름 본가에서 본 나의 해방일지 1화는 인물관계도도 읽지 않은 내가 맘껏 인물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요즘 나오는, 요즘 본 어떤 드라마보다 깊숙이 상상하게 되는 인물들은 역시나 박해영 작가의 손에서 깊숙하고도 단단하게 그려졌고 그렇게 박해영 작가는 멈춰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박해영 작가의 대부분 작품을 모조리 시간의 흐름대로 그 시기에 봐왔지만, 매번 느끼는 건 같은 말을 하고 싶더라도 같은 방식으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고 돌아 크게 보면 말을 우수수 내뱉는 인물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자기 복제가 가장 덜하다. 난 그 자기 복제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작품에 놀랐다.


잘근잘근 여러 단어를 섞은 문장을 빠르게 뱉어내는 특유의 문체는 배우들을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여러 인물들이 그 대사를 가지고 빛을 발하고 매력을 되찾고 호감을 불러온다. '최고의 이혼'을 시도 때도 없이 다시 보는 나에게 이엘 배우와 손석구 배우의 새롭고도 요상한 조합은 내 흥미를 돋우고, 마치 '연애의 온도'를 다시금 상기하게 만드는 이민기의 약간 찌질톤 섞인 쏟아내는 연기가 오히려 그의 연기를 편안히 보게 한다.


거기에 토종서울인이 아니라면 공감할, 아니 눈물지을 노른자 땅에 대한 집착과 분노, 스트레스 등등등으로 흘러가는 중심 플롯이 매화마다 나를, 우리를 울린다.


차곡차곡 마구 내뱉은 말들이 좀 더 큰 의미로 확장되고 건설될 때, 즉 큰 그림이 그려질 때 희열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 드라마는 그저 하루하루 내 마음을 견디고 그날 받은 상처를 그날 밤 내내 상기하다 잠에 드는 우리에게 씁쓸하게 위로를 건넨다.





"해방일지 챕터2를 시작한 그들, 마지막 화를 보고"


여태껏 버티고 버티며(사실은 즐겼을지 모를) 마지막 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낀 건 작가의 전작 '나의 아저씨'에서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장면이자 제일 마음이 쓰이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이 드라마의 16부작 내내 또다시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그 장면은 정희가 지안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인데, 4년 전에 봤던 그 장면에서 내가 느낀 그 무언가 '들킨'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드라마는 그 들킨 기분의 연속이었고 그래서 괴로웠지만 또 그래서 버티고 버텼다. 울며 버티고, 웃으며 버티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처럼 나도 함께 살아 있었다. 후반부에 묘사된 그들에게 닥친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나도 함께 살았다. 


함께 죽고 함께 살던 기묘한 체험의 드라마.



6년과 4년의 시간이 흐르며 다시금 작가의 전작을 때때로, 자주 다시 들여다보지만 그때 받았던 들킴의 느낌은 잊을 수 없고, 그때 받았던 위로는 조금씩 잊혀간다.


분명 이 드라마에서 살고 죽으며 받았던 위로는 잊어도, 나에게 나 자신이 들킬 때마다 들었던 생각의 꼬리는 절대 잊히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무한대의 용기가 아니고서야 다시 이 드라마를 들여다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기분까지 든다.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화가 방영된 22년 5월 말, 써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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