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도 따져 묻는다. 너도 함께 '의심'하지 않았냐고.
이 영화를 본 장소가 강제성을 띤 영화관 외 다른 곳이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처럼 노트북으로 왓챠를 접속하고 두 시간 반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의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일어나 앉기를 반복했을 것이며, 영화의 후반부는 보지도 못한 채 잠에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율성을 띤 장소라면, 피로 쓰인 분노라는 두 글자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을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강제성을 띠고 함부로 일어날 수 없는 장소라는 점이 내 두 눈으로 '분노'를 마주하게 했다.
이 영화의 장르를 살펴보려 중심 이야기만을 바라본다면 범죄를 짓고 달아난 사람을 쫓는 ‘범죄 스릴러’ 영화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살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를 간단한 장르 영화로 범주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묘하게 세 인물의 얼굴이 모두 겹쳐 보이는 몽타주는 어느 누구도 범죄자라고 특정할 수 없을 만큼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미스터리 영화일 테고, 나오토(아야노 고)와 유마(츠마부키 사토시),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와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의 사랑만 두고 본다면 ‘드라마’ 그리고 ‘멜로’ 영화의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이 영화의 제목은 그래서 더 함축적이고, 명시적이며 사실적이다.
이 영화는 ‘분노’라는 제목을 통해 어쩌면 단편적인 명사로 영화를 표현한다. 나는 이 명사에 더불어 또 다른 명사가 이 영화를 나타낸다고 본다. ‘의심’이다. 의심과 분노는 이 영화가 관객을 속이지 않고 표면에 드러내는 줄거리이자 장치이며,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속 각기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다.
'분노'와 '의심'은 그 속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다. 영화 '분노'는 믿어야 하는 사람을 '의심'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처절하고도 본능적으로 풀어내는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분노 속 배우 아야노 고를 보고 ‘걸어 다니는 상처’라고 비유했다. 함축적인 고통과 고난이 느껴지는 비유만큼이나 배우 아야노 고가 맡은 ‘나오토’라는 캐릭터는 늘 비유적인 말로 자기를 에워싼다.
그런 한 겹의 막은 유마가 나오토를 의심하게 만들고 경찰의 전화에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모든 상황을 회피하게 만든다. 그 막은 사실 나오토가 유마에게 던지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이런 나오토의 죽음을 여느 게이 영화의 클리셰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제이크 질렌할)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게이 영화들 속 커플은 애틋한 사랑을 뒤로하고 끝내 한 명의 죽음으로 이별을 맞는다. 하지만 나오토와 유마의 이별은 클리셰조차 ‘컨벤션’이라 칭하고 싶다. 뻔할 수 있는 사랑의 결말을 컨벤션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영화는 분노와 의심 끝에 마주하는 유마의 고통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의심의 대상들이 정말 범인인지, 아닌지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영화 전반의 깔린 주제를 해결하고 해소하는 작업을 해나간다. 하지만 그 클라이맥스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어째 카타르시스보다는 형용하기 어려운 또 다른 분노이다. 그리고 인물들조차 사건의 해결을 분노가 가득 담긴 절규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절규를 미디엄숏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그 분노를 여과 없이 전하고 영화를 보는 ‘나’로 하여금 그대로 인물들의 분노를 나눠 받게 만든다. 우리는 이때부터 비로소 인물들과 분노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함께 아파했다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기를 반복한다.
이들의 절규가 가득한 울음은 누구에 대한 분노였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한 자신일까, 나를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일까. 혹은 나에게 일어난 일 자체에 대한 분노일까.
어느 누구의 분노도 원인을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는 이 영화는 붉은 피로 쓰인 ‘분노’라는 두 글자를 스크린에 가득 차게 보여주는 장면화만큼이나, 인물의 감정을 숨기거나,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 절규를 뒷받침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배치함으로써 서스펜스를 구축한다.
잘 짜인 구조 속에서 관객들은 역할놀이를 하듯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영화 속 인물들에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고 이즈미(히로세 스즈), 타츠야(사쿠모토 타쿠라) 그리고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를 보면서는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그들의 관계성을 파악하며 철저한 관찰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셀 수 없는 동일시의 감정과 관찰자의 입장을 반복한 끝에 이 영화는 2시간 20분 동안 찾아 헤매던 용의자, 야마가미를 보여주고 다시 관객에게도 따져 묻는다.
“너도 함께 의심하지 않았냐고.”
함께 의심하고 함께 분노하며 관객은 약간의 죄책감도 얻는 영화, ‘분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