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간 끝에서 온 빛 Nov 10. 2023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않은 것을 절대로 줄 수 없다.
나의 소유란 줄 수 있을 때 증명된다.
그 사람이 주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나는 짜증과 분노와 사랑을 줬을까? 부디 사랑만 주고싶다. 내가 가진 것은 그런것들만 있으면 좋겠다. 분노나 짜증말고. 그런데 진영이라는 인간은 분노나 짜증과 냉소와 무관심을 잔뜩 가지고있는 모양이다. 혹은 무시를 가지고있고 죄책감과 슬픔을 가지고있다. 이 인간은 남들에게 그런걸 선사했기때문에. 난 그런 슬픔이나 죄책감을 앞으로 누구에게도 주고싶지않다. 그게 실은 진심이다. 그리하여 슬픔을 주지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나는 편집증이 심한 편이다. 그리하여 남들에게 피곤함을 꽤 많이 선사해온 사람이다. 그런고로 나는 피곤함을 가진 사람인데 알고있어도 고치지못한다.
내가 고치고싶다고 고쳐지면 내가 지금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유사가 됐지않을까.
피곤함은 좀처럼 고쳐지지않는다. 그리하여 피곤한 사람이 되었다. 열심히 살지않는 것이 어쩌면 내가 잘되어가는 해결책같은거 아닐까? 누군가는 게으름이 문제지만 누군가는 열심히가 문제가 된다. 이 세상은 다양성의 세계이기때문에 잘되가는 방법이 피곤하게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나는 열심히하면 좀 안 풀리는 타입일 것 같다는 것을 유추를 해볼 수 있다.
열심히가 어려운 사람이 열심히해야 잘되는 것처럼 나는 열심히가 너무나도 쉽다. 그렇기에 반대로 열심히 살지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쉬는게 너무 어렵다.
아참 이 글의 결론을 지어야지.
소유의 의미란 주는 것이다. 주는 것=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