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 끝에서 온 빛 May 30. 2024

몸안에 영혼이 있을까?

나도 착각을 많이 했고 다들 많이 착각하고는 하지만

나란 존재는 나하나도 스스로 구하지못하여 남을 구할 수 있지도 않은 존재이다. 내 몸이 다른 사람의 몸보다 귀하지않다는 사실도 자주 까먹기는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는 알고있다.


나를 포함해 99%의 사람들이 몸안에 영혼이 있다고들 많이 착각한다.

뇌안에 생각이 있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이다.

마음 안에 몸이 있다.

생각 안에 뇌가 있다.


너란 존재는 작디작은 몸안에 담아둘 수 없이 무한한 존재이거늘.


너는 고작 몸이 아니다.

너가 삶을 살면서 세상에 만족할만한 것들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이 세상은 온통 몸에 필요한 것들로만

이루어져있었기때문이다.

몸이 아닌 너란 존재가 이 세상에 만족할만한 것들을 찾지못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등을 지고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이 세상이 가짜라면 왜 등을 져야하는가

평범해지라는 말이다.

슬프면 슬퍼하고 아프면 약을 먹고 배고프면 밥을 먹어라. 살면서 너 하나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은 모조리 도움이 되는 일들은 모조리 행해도 좋다. 세상의 온갖 재미를 찾아서 쾌락을 향유하며 흥청망청 살라는 것도 아니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삶은 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평범해져라.

이것은 싯다르타가 발견한 중도이다.

부처님은 다해보고 했던 말이다.

뭔 깨달음을 위해서 극단적으로 굶는 수행을 할 필요도 없었고 성관계도 많이 해보니 만족하는 일도 없이 행복하지도 않다고 하더라.


아주 적당히 적당히 세상을 등지지도 빠지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은.

환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다.

없는 것을 없는 것 그대로.


 실재에 대해서 알 수 있어야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다.

 그 너머를 보라는 말인데

세상이라는 비실재를 넘겨본다면 그 너머

완벽한 일체성 보게 된다. 

시간이 닿지않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너의 정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시간은 이미 끝나있다.


완벽한 일체성을 도교의 말로는 도라고 하며 다른 종교들은 하나님이라고도 하며 천국이나 극락이라고 다른 말로 불리지만 그것은 다 같은 것을 지칭한다.

그것이 본래 너의 정체이다.


아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여러 사이비종교들에서 하나님은 죄에 신앙을 둔 것처럼 나온다. 그 예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달아놓는 형상을 하고서 사람들에게 심으려는 의도는 예수가 그렇게나 고통을 받았는데 너네도 그래야하지않겠냐는 무언의 확실한 협박이다. 성서라는 것은 신적인 존재가 써야만 성서여야할텐데 일부를 빼고는 성경은 거의 다 사람들이 지어낸 글들뿐이다. 그게 무슨 성서인가.


 사람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가는데 종교를 지닌 사람들은 보통 두려움보다는 죄책감을 더 갖는 성향이 있으며 종교를 가지지않은 사람들은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것은 필요없다. 종교를 가지지않아도 되고 무신론자가 될 필요도 없다.


죄에 신앙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이라는 것은  인간이 지어낸 가짜이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암시를 주는 신은 인간이 지어낸 허상이다.

그것은 인간의 속성이지 신의 속성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만든 신을 자비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세상에 나를 혼자 내버려둘 수가 있냐고 어찌 신이 있다면 세상에는 살인이 늘 일어나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기다리냐며 신이 잔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세상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무한한 힘을 가진 너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고는 만들디않았다고 잊는 일까지 선택했다. 신의 권능을 지닌 자는 이런 가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한번의 실수로 이 가짜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래봤자 가짜지만.


하지만 신으로부터의 분리는 단한번도 일어나지않았다. 분리가 되었다는 착각이 죄책감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그런데 두려움은 허상이다.

신으로부터 분리는 단한번도 일어나지않았기때문이다.

이 육체는 에고의 상징물이다.


몸이 허상이라는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난 정말 마음에 든다. 매력을 느끼는 곳애 과연 우연이 있을까?우연은 어디에도 없다.


그게 진짜니까.

작가의 이전글 하늘에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