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에 관하여
‘당신의 신체를 조립식처럼 분리하고 다시 장착할 수 있다면, 어느 부분을 분리하고 싶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본 적 있다. 그리고 그 밑에 달린 댓글에는 시력이 안 좋은 눈을 깨끗하게 씻어서 다시 끼우고 싶다 거나, 위나 폐 같은 장기들을 꺼내어 깨끗하게 씻어서 햇볕에 말린 후 다시 집어 넣고 싶다는 그러한 대답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뜨거운 물에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 집기류들을 넣어 소독하여 쓰고, 밥을 다 먹은 후 나온 설거지 거리들에 거품을 묻혀 깨끗이 씻고 말려서 다시 쓰는 것처럼 우리의 몸의 일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속이 편할 것만 같기도 하다.
나는 예전에 학교에서 지루한 수업을 듣거나 하면 꼭 하는 상상이 있었다. 당시엔 조금 잔인한 상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의 뇌를 꺼내어 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얼룩지거나 눌어붙은 것 같이 시꺼멓게 된 원치 않는 기억들을 손가락으로 마구마구 문질러 지워버리고, 그곳에 꽃향기나 과일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려 기분 좋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상상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어떤 상황이 기억으로 각인이 되면 잘 잊혀지지 않고 마치 머릿속 한 구석에 문신으로 새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살아가는 내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날과 비슷한 온도나 습도, 혹은 내게 영향을 준 어떤 사람과 닮은 누군가와 마주하거나 한다면 어김 없이 나는 그 날로 소환된다. 아주 생생하게. 그래서 해가 가면 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게 상처주려고 하는 것들을 미리 차단하고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도전을 해야 길이 열리고, 어떤 것에 자꾸 맞서보아야 경험치가 쌓이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그 전까지 나는 온 몸을 떨며 고민한다. 이것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면 잘 아물지 않고 또 다시 기억 속에 새겨질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
아마, 나의 상상처럼 내 뇌를 꺼내어 본다면 상처 투성이일 것만 같다. 여기 저기 새겨진 지우고 싶은 기억들에 할퀴어진 자국들이 널브러져 있을 것 같고, 좋았던 기억들은 소중하다고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고선 그 상처들에 파묻혀 오히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오류들이 반복되고 있을 테다. 참 이상하다, 내 머리는. 좋은 기억들도 분명히 있는데, 많을 텐데. 그런 것들은 전부 어디로 잃어버리고서 자극적이고 쓰라린 기억들만 끌어안고 산다. 어쩌면 내가 점점 나를 아프게 할 것 같은 사람들과 더 마주하지 않고 말을 섞지 않으려는 버릇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인 것 같다. 뇌를 꺼내어 씻을 수 없으니, 좋지 않은 기억으로 이미 꽉 들어찬 용량 없는 하드디스크 같은 마음에 더 이상 상처를 설치하지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