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고 착각하면서 사는데, 효율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빨리 판단하도록 설계된 탓이라고 한다.
이해가 얼마나 멀리 돌고 돌아 시간이 걸려서 닿을 수 있는 한적한 곳의 섬인지, 이해라는 말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마음으로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먼저 이해를 잘 해 주는 사람이 되더라도, 꼭 이해를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먼저 이해했듯이 그 정도 만큼은 어느 정도 이해를 받을 수 있기도 하고, 보이지는 않지만 넘을 수 없는 깊고 큰 간극을 확인할 뿐 여전히 오해를 받기도 한다.
'꼭 무엇을 하면 무엇을 받는다'는 정답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GIVE AND TAKE
나와 내 상황, 내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고 상대는 일단 고개를 끄덕 끄덕하며 듣고 알았다고 한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차례라고 힘차게 주장하고 나서는데, 그 다음에 서로 한 발자국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지점을 대화의 도돌이표를 보고 느낄 때 참 답답했다.결코 물러설 수도 없고 지는 게 싫지만 내 귀에 내내 울리는 도돌이표 반복이 지겨워서 그냥 이해했다고 하고 끝내고 불편해진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는 상대를 안 보기로 다짐한다.
상대와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는 언제나 유동적인데, 내 머릿 속과 마음 속에 기존에 찍은 좌표를 수정한다. 안정감과 편안함의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졌고,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좋아하는 사람들' 쭉 알고 지내고 싶은 소중한 인연 - 귀중한 지인 영역 밖으로 넘어갔다.
웃고는 있지만,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론은 커녕 '이러다 곧 끊어지겠다!' 싶게 서로 잡아당기기만 해서 팽팽해진 고무줄처럼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굳이 반복된 대화를 하느라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을 허투루 쓰고 낭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도돌이표 대화는 stop! 도망쳐!'
같은 길, 같은 공간에 설 수 없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걷던 길로 쭉 가고, 서로 엉켜서 진로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된다고 본다.
멀리서 응원할 때는 흐뭇하고 좋은 사이지만, 가까이서 자주 논의하며 협업할 때 본의 아니게 서로의 발목을 잡는 악연이 될 때가 있다.
내가 협업할 때 가장 힘들어 하는 대목이 바로 이런 건데, 상대방 업무 성향이 내 성급한 속도보다 느리고(신중한 성향은 직관적인 성향과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업무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부분이나 소요 시간에 대한 다른 견해,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 대다수의 것들에는 사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해내야 하는 당사자끼리는 어쩔 수 없다. 그 밖에서만 잘잘못을 따질 여유가 있는데, '왜 그래 서로 불편하게, 도와가면서 잘 지내지 그래' 라는 상황 해결에 도움 안 되는 하릴없는 말외에는 사실 딱히 조율할 방법도 없다. '그냥 묻고 각자 따로 가.' 부딪칠 일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방향을 달리해 갈 길을 간다. 그 조차 어려워 보이면 포기해도 덜 아쉬울 사람이 떠나는 거다.
그 시점에 중요도에 따라 판단할 문제지, 단 한 가지의 정답은 없다고 보고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여러가지 정보를 알고 종합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인데, 대체로는 판단할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내가 당사자가 아닐 때만 꺼낼 수 있는 시각이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따져보기로 한다. 곰곰히 아주 오래 수시로 아무 때나 사정없이 틈 나는 대로 시작되는 긴 여정이다.
정보 공유가 부족하다는 말에 대해서는 경험상 할 말이 많은데, 어떤 경우에는 그 것을 공유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문제란 말이다. '정보 공유를 잘 해야한다'는 이상적인 말은 그 누구라도 얼마나 외치기 쉬운 말인가, 반면 치열하게 뭐든 밀고 들어오는 일들을 쳐내기 바쁜 실전 업무 현실에서는 그 것을 이상대로 실천하기 어려운가를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각자 입장에 따라 할 말이 달라진다. 어떤 경우는 알리지 않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것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오래 협업을 할수록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져 난이도가 높아진다.
비교적 어릴 때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서 지금은 그 때의 과오를 가끔 떠올리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깊고 넓게 배운다"는 게 바로 이런거구나 생각하고, 업무 현장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곤 한다.
아직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히지 못했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상 업무 스타일은 존재할 것이다. 나와 달라서 각자의 몫을 하는 중이니 서로 부딪치지 않고, 설령 이해는 안해도 최소한 불필요한 오해가 깊어지지 않게 내 마음을 잘 요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다.
착각의 늪에 허우적대면 온갖 부정적인 아우라가 나를 감싸서 일에 집중할 에너지를 엉뚱한 곳으로 흘려보낸다.
누군가 탓할 사람을 찾는 '내 머릿속 탈출구 없는 미로'로 나를 데려가서 존재하지도 않는 출구를 찾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다.
굳이 그럴 필요없는 일에 아까운 에너지를 할당할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면 그럴 필요없었는데 하는 '애꿎게 남을 비난하는 일'들이 대체로 그렇게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앗아가는 것 중 하나다. 전혀 영양가가 없는 일이다.어차피 각자 말도 못하게 힘든 처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하는 성향도 과거 나를 스스로 끊임없이 괴롭힌 달성 불가능한 이상적인 과업 중 하나였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사건으로 회자되어 본 적이 있다.
남의 일이라서 쉽게 가쉽처럼 여기며 하는 이야기가 당사자 귀에 들어오면 거대한 암석으로 바뀐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내 말을 오해하는 사람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남은 나를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말을 누구에게 전했다더라 해서 건너 들었던 말도, 그 말을 전한 사람도, 그렇게 듣게 만든 최초의 발화자도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으니 아직 개운하게 기억에서 말끔히 지워진 건 아닌데, 그래도 전보다는 꽤 가벼워진 상태로 떠오르는 걸 보면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치유가 불가능한 병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만 세상에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곁에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을 많이 만나고, 가까이 두고 꾸준히 지속적인 교감을 나누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응원해 줄 사이만 남아 오래 가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서로 불필요한 관계는 모두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소멸됐다. 어떤 소원해진 관계는 나만 아쉽고, 또 어떤 희미해진 사이는 내가 쥐고 가기가 너무 힘겨워서 놓아버렸다.
마음이 서로 편하고, 만나면 좋은 사이만 오래 간다. 불편한 사이는 언젠가 어떻게든 끊어지게 되어 있다.
좋은 사이라는 관계가 꼭 얼굴을 보고 만났던 사람,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는 에너지는 아니다. 응원하는 것을 꽤나 진심으로 하다보니 온라인에서만 가끔 반갑게 소통하고 응원하는 사이들이 꽤나 생겼다.
앞으로도 내 기준에서 간장 종지만한 마음 그릇에 차마 담기지 못해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는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불필요한 오해나 어리석은 착각은 하지 않도록 애써볼 요량이다.
서로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니까, 각자 사는 모습은 다르니까, 나도 누군가에게는 또 이해 못할 특이한 사람처럼 그래 보였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