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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캐처 Feb 29. 2024

마음이 자주 불편해지는 편이지만 안괜찮아도 별 수 없어

왜 때문에 나는 이렇게나 흔들리며 사는 거지

철문을 굳게 닫고 우리 가족만의 성인 듯 집 안에서 생활하다가 밖을 나설 때면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 하나로 편안해지고 쉴 수 있는 공간과 긴장 바짝해야 하는 바깥 세상이 나뉘어진다.


가끔 마주치는 이웃과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벽면 디스플레이 광고가 괜시리 과하게 들릴 만큼 정적이 흐른다.


강아지를 끌어 안고 타는 분은 혹시라도 무서워하는 이웃이 있을까봐 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의 어떤 시기에는 반드시 자기 손으로 버튼을 누르고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봐야 안심이 될 때가 있어서 '내가! 내가!'를 소리높여 외치는 아이와 그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은 성급한 '그래 그래 알았어 니가 눌러' 부모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어제는 문을 열었을 때 깨끗한 환경을 책임져 주시는 선생님을 만났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할 상황이 되어서 인사를 하고 손에 무겁게 들린 것을 봤는데, 거의 먹지 않은 채 케이크 박스를 가득 채운 망가진 케이크와 폭죽의 긴 꼬리들이었다.


손에 그 거추장스러운 것을 들고 집 문 앞에 있는 광고지를 일일히 떼시는데, "왜 저걸 굳이 계단에 버렸을까!" 선생님의 이야기를 내 입으로 따라서 한 번 더 내 뱉고 그 뒤로 어쩌다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아무 생각없이 버린 얼굴 모를 그 사람과 같은 편에 서 있는 것 마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시간 내 할 일이 많으실텐데, 계속 손을 불편하게 쓸 수 밖에 없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겠지, 그리고 그 원인은 이 계단을 이용했을 확률이 높은 어느 입주민의 이벤트일텐데 '누가 치우라고 그걸 저기에 버리지? 생각이 없나?'로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특정할 수 없으니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불편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고,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이렇게 세세하게 머릿 속을 지나다니니 이게 무슨 미친 공감력인가 싶다.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건데, 이건 뭐 좋을 게 하나도 없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 투성이다.


오래 쌓아온 지난 경험에서 비롯된 공감력 내공은 시간이 갈수록 꽤나 레벨이 높아진것 같지만, 실질적인 해결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행동에너지로 바꿀 수도 없는 처지에서는 그다지 좋을 게 없다고 느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공감하고 싶기도 하고, 제발 공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남의 사정과 마음 상태를 헤아리는 건 참 많이 피곤한 편이라서 그렇다.


어느 날에는 문을 열었을 때 마침 계단을 내려와 방화문을 열고 우리 집 문 앞에 광고 전단지를 붙이는 분을 만났다. 그 때는 연초여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르바이트 겸 하시는 일일 수도 있고 광고 전단지 속 가게 관계자일 수도 있다.


집집마다 손 가락 한 마디 정도의 테이프에 위태롭게 붙인 전단지, 과연 언제 제거될지 모르는 운명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가게를 관심있게 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탄생한 결과물이다. 받거나 남이 준 것을 본 적이 더 많고, 몇 번 만들어 본 적도 있는데, 누구나에게나 반가워할 기쁜 소식을 담은 자료만은 아니라는 것을 더 잘 안다.


진심어린 간절함은 알지만, 유심히 5초 남짓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전부, 그 마음을 알아도 꼭 연락할 상황은 아니니 거기까지다.


매사 이렇게 헤아리니 머릿 속이 티 안나게 분주하다.





제발 그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저녁에 짧게라도 달리고 있다.


몸이 힘들고 땀이 나서 죽겠다는 생각이 온 머릿 속을 지배한다. 아 힘드니까 이제 그만 뛰어야지 하다가도 어쩌다보니 뛰게 되니 어디까지 더 뛰어보자 하고 계속 시점을 미루고 미뤄도 본다. 그나마 달리는 건 생각하면서 힘든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칼로리 소모도 되고 작고 귀여운 성취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건강한 상태,  몸이 가벼워질 만큼 뛰는 건 아니어서 딱 그 날 섭취한 칼로리의 5분의 1 정도만 증발시키는 것으로도 일단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축해 본다.


그 전에는 그 것조차 안했으니까, 이제는 안 하면 안 될 때가 되서 어떻게든 해 보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꾸준히 해 보는 데 작은 의미를 부여해 본다.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성취감을 느낄 일들이 많지 않다. 결과는 내 예측대로 흘러가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과 하늘이 돕는 행운'의 영향이 더 크다고 자주 느낀다. 일단 문득 떠오르는 것들, 증거와 근거, 트렌드 데이터와 정보를 찾아 성실히 뭐라도 애써 해 보는 게 전부이고, 오늘을 살아낸 대부분의 사람들 일상 속 성실한 과정들의 모습일 것이다.  


사는 한 끊임없이 해 나갸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데 안하고 미루고 있는 것들도 상당히 많아서 그 것들에 대한 무거운 마음까지 한 편에 짊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맙거나 궁금한 친구, 안부를 물어야 할 친척에게 생각만 하고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인데, 과감히 실행을 해야 그 무거움도 증발시킬 수 있을 거라서 대체 그 시기는 언제로 해야할지가 고민이다.


오히려 업무로 매일 보는 사이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분명 내가 상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도 누군가의 죽음 등 너무 굵직한 인생의 사건 속에서만 만남이 이루어진다니 너무 슬프지 않은가, 얼마나 대단한 일에 파묻혀 사는지 주변에 무심한 건 내 캐릭터로 굳혀진지 오래된 것 같지만 말이다.



스레드에서 좋은 사람들을 우연히 많이 만나서 브런치스토리에는 못 꺼내는 속마음도 공감 받고 위로 댓글도 받았는데, 접속할 때마다 스레드 알고리즘을 칭찬하는 글들이 자주 반복해서 보인다. 긍정 글을 자주 보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고도의 계략이려나? 그렇게 까지 정교할 리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스레드 꽤 괜찮네?' 그런 마음이 들어서 자주 스레드를 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계정에 글을 자주 발행하고 반응도 자주 남겨서 우선 노출될 뿐일 것이다.


책을 써서 약간의 수입을 얻는 작가님들의 계약 조건을 들어보면, 브런치 스토리 응원하기 수수료가 40% 이고,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게 60% 가 계좌로 입금된다는 건 그리 나쁜 조건만은 아닐 거라고 본다.


일단 브런치 작가가 되기만 하면 인쇄 출판하는 것보다 허들이 낮아서 꾸준히 매력적이고 성실한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서서히 사로 잡아 응원하기를 받을 수 있으니까, 글을 참 매력적으로 쓰는 분들이 많으니 '나도 해 볼까?' 싶은 긍정적인 에너지의 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난 며칠 글을 쓰고 또 마침 어쩌다 다 날리고, (브런치 스토리를 탓해 뭐해 싶고,  오랜 시간 동안 작성한 문서가 난데없이 전원이 OFF되서 날아간 것이나 매한가지라고 보면 내 상황의 문제이니 차치하고) 오랜 만에 그냥 보고 느낀 내 시선과 이야기를 날아가기 전에 붙잡는 심정으로 남겨본다.



제목은 소크라테스만 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챕터마다 다른 철학자를 다루고, 읽다보니 글 한 문장 한 문장 사이 사이마다 꽤나 사유의 깊이가 있어 마음에 드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몇 번의 추천과 장바구니 담기 만남의 순간이 있었는데, 구매 결정을 확실하게 내리도록 추천해 주신 분이 바로 철학인플루언서 브런치스토리작가님이셨다.


철학이라는 말에 무조건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부담없이 걷어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는 작가님께 내가 무려 아홉 번째 응원하기 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기로 작정하는 마음을 갖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본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서로 고마우면서 고맙기만한 사이가 되고 싶다.



글쓰기라는 행위에 마음의 부담은 이제 다시 걷어내기로!


'내가 완전 좋은 글을 쓰고야 말겠어, 읽는 사람들마다 감탄의 기립 박수를 치도록 만들어야지' 하고 두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글을 쓰면 아무래도 글도 편안하게 읽히지 않을 것이다. 글이 안 써 질 때 어떤 탁월한 선생님을 만나 강사료를 드리고 어떤 공식이나 스킬을 전수 받으면 약간의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글은 자기 안에서 길러 내야 하니까 뭐든 그 사람 자신이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 가장 반짝 반짝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괜찮을 글을 꺼내는 좋은 방법이 뭘까 하고 오래 생각해 본 결론은 어떤 생각이든 나를 통과하는 것을 몇 걸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나를 세우고, 그 상황에 대해 심사 숙고하고 숙성 시키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써서 발행해 보는 것이다.


무반응도 경험해 보며 '이제 당분간 이런 일기는 쓰지  말아야지' 반성도 해 보고, 운이 좋아서 어쩌다 좋은 반응을 얻으면 '그저 감사하고 얼떨떨한 기분'도 느껴본다. 쓰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아무 글이나 일단 써 본다. 계획적이고 기획적인 사람은 목차를 세워서 쓰고 나처럼 '아무렇게나 살래 잠시' 자유모드인 사람은 손과 머리와 마음이 가는대로 일단 쓰고 보자. 규칙도 없고 이 전에 발행한 글과 이 뒤에 발행할 글은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냥 나만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와 다 흩어져 버리기 전에 조금이라 붙잡아 본 생각 조각 조각들이다.


이 글도 그렇게 아무렇게나 쓴 '아무 글' 인데 쓰고 나서 보니 너무 길고 장황해져서 내가 이렇게 '말과 글이 고픈 사람이었나?' '그렇긴 하지. 맞아. 하고 싶은 말보다 꼭 해야할 말을 적게 하며 살고 있지. 잘 살고 있지는 않는군.' 잠시 반성과 격한 동의를 동시에 해 본다. 스스로 칭찬 보다는 불안함을 끌어 안고 반성과 회고를 더 자주 하는 편이다. 나 자신에 대해 깎아 내리는 건 아닌데, '내가 하고 싶고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을 제대로 못해서' 그 마음이 저 바닥에 항상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은근히 마음 불편한 상태가 지속된 채로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람의 인생에 그런 한 순간이 순순히 허락될 리가 없으니, 내가 과감히 저지르거나 눈을 딱 감고 결단을 내리고 실행해야 하는데, 터닝 포인트를 잡기가 참 애매한 포지션인 채로 살고 있다. 구구 절절 세세히 긴 이야기를 안 해도 이 대목에서 뭔가 이해가 가는 분은 나와 비슷한 심리 상태로 묵묵히 오늘을 견뎌내는 중이라고 본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로 섭취하는 '카페인'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달콤 씁쓸하게 선물하는 '짧은 각성 상태'라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무 글을 발행하는 무모한 나답게 급 마무리로 넘어왔다. 더 이상 길게 쓰면 부끄러워서 안 될 것 같다. 아래 사진 속 플레이리스트와 자정 넘은 새벽 시간의 감성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아침과 오후에는 이런 글이 도저히 나올 수 없다.



일단, 며칠 뒤 3월에는 진짜 브런치 스토리 구독하는 분들 차근 차근 밀린 보러 다닐 거다. 오래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어떤 중요한 문제가 서서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고, 어떤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고, 어떤 많은 것들은 결단과 행동만 기다리고 나만 목이 빠져라 크게 뜨고 쳐다보고 있다.


나처럼 사는 사람. 몰라서 그렇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스레드에서 그걸 많이 느꼈다. 브런치에서도 그런 우연한 반가운 만남을 이어주는 알고리즘 로직의 행운이 올해도 있기를 바래 본다 : )

 

일단 이 시간이면 무조건 몸이 피곤한데 아직 내 몸을 흐르는 각성제 덕분에 뭔가 단순해져버린 뇌가 '아직 멀쩡하고 쌩쌩해¡'라고 착각하고 있다. 커피도 술과 다른 방향으로 살짝 위험한 존재다.


내일은 투 샷만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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