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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면서

내시경 검사


연초에 내시경 검사를 했다. 그동안 내시경 검사와 수술을 하면서 몇 번의 전신마취를 했다. 그런데 전신마취는 언제나 두려운 존재다. 아버지의 경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조금 심한 정도의 폐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으신 후 결과가 좋지 않아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본가로 모셔졌고 거기까지 따라온 의사에 의해 집에서 사망 진단을 받았다. 30년도 더 된 먼 세월 너머의 일인데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전신마취가 항상 두렵다. 전신마취를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경우와 다르다, 나는 아버지의 경우와 다르다’라고 자기 암시를 걸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이번 검사 전날 밤 잠자리에 누워 ‘혹시 이게 내가 마지막 맞는 밤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고, 검사하는 곳으로 운전하고 가면서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은 아니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집에서 출발 준비를 할 때 아내는 밖이 추울 테니까 목도리를 하지 않겠냐며 목도리를 건넸다. 그 목도리는 몇 년 전 아들아이가 페루 여행 갔다 오면서 선물로 사 온 것이다. 목도리를 받았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사히 귀가할 것을 바라는 아들의 기원을 전신갑주 삼아 몸에 두르는 기분으로 목도리를 목에 감았다.


오래전에 그런 글을 보았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마취에 들어갈 때 하나 둘 셋 하고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 딸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행한 경우를 맞이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아들 이름과 딸 이름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난 후에는 나도 항상 그렇게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마취를 위해 입에 장치가 설치되는 순간부터 나지막하게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들 태어나서 처음 대했을 때부터의 다양한 모습들을 떠올렸다.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가 있었는데 그날은 딸아이가 병원에 함께 있었다. 수술실로 가기 위해 간호사가 침상을 밀기 시작했을 때 딸아이에게 손을 내달라고 하여 딸아이 손을 잡았다. 이 세상 마지막 촉감이 딸의 손을 잡은 것이라면 많은 위안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딸아이는 그 순간에 아비가 왜 자신의 손을 잡았는지 모를 것이다.


전신마취는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일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다행히’ 마취에서 깨어났다. 병상 곁에 아내가 있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부활을 맞은 것이다.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맞는 작은 부활에 이은 중간급 부활인 것이다. 마취에서 깨어 눈을 뜨는 그 순간에 검사받으러 가기 전까지 가졌던 두려움이 저 멀리 사라졌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해서 ‘언제고 헤어질 텐데 그 언제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매일매일을 소중한 것으로 맞이하고 그 하나하나를 귀중하게 사용할 일이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절감한다.


신년 벽두에 전신마취에서 깨면서 부활을 맞이했으니 감사. 모든 것에 감사. 언제나 감사. 이 풍성한 감사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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