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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단상

잡초를 뽑으면서

잡초.


사실

잡초라는 이름의 풀은 없다.


내가 그 풀의 이름을 모를 뿐이다.

내가 그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앞에 '잡'이라는 단어를 붙여

'잡초'라는 다소 얕잡아 보이는 이름을 붙인 후

그 많은 풀들을 '잡초'라는 이름 하나로 뭉뚱그려도 되는 건가 싶다.


'잡초'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풀에 대한 무식과 무지를

그 풀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어느 풀이 잡초인가 하는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

잡초는 내가 원하지 않은 풀이다.

백일홍이 피기를 바라는 곳에 분꽃이 피면

분꽃이 잡초인 것이고,

분꽃이 피기를 바라는 곳에 백일홍이 피면

백일홍이 잡초가 된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이 잡초가 된다.



잡초는 잘 자란다.

강인한 생명력,

그것은 잡초의 이미지다.

날이 몹시 가물면

잡초는 그 가문 날에 맞추어 자란다.

결코 실망 낙심하지 않고

그 상황에 맞추어 살아나간다.

상황이 나쁘더라도

몸을 바싹 낮추어 잘도 견딘다.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으면서

'나는 이 잡초보다 나은가?

 나는 이 잡초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는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비 온 뒤에는 잡초를 뽑으러 나간다.

땅이 물러서 뿌리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린 뒤끝이라면

뿌리가 영양분을 흡수하기 좋을 때인데

비가 내렸기 때문에 뿌리까지 뽑기가 좋다는 그 사실에

겸손을 배운다.

내 앞에 좋은 날이 있어도

어쩌면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잡초.

세상을 악착같이 살지는 않는 내게는

좋은 스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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