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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과 두루마리

문자를 적어가는 방향

  원래 한문은 세로로 적어가는 종서의 방식으로 글을 적어간다. 그런데 한문을 세로로 적어갈 때 한 줄을 다 적은 다음에 다음 줄을 그 줄의 오른쪽에 적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줄의 왼쪽으로 적어간다.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오른손으로 글을 적는 사람이 많으니까 오른손으로 쓰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그렇게 적으면 이미 적은 글이 손에 의해 가려지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문자를 어디에 적는가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이야 ‘종이’가 가장 보편적인 기록 수단이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종이에 가까운 것은 중국 후한의 채륜에 의해 105년경에 발명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돌, 거북의 껍질, 동물의 뼈, 찱흙이나 점토판, 양피지, 파피루스에 기록하기도 하고 나무껍질 따위에 기록하기도 했다. 여기서 중국의 죽간(竹簡)을 주목하기로 한다. 죽간은 대나무 세로로 잘게 쪼갠 후, 그 쪼갠 것을 세로로 세워 옆으로 나란히 놓고 나서 끈으로 엮은 기록 수단이다. 이 죽간의 모양에서 책(冊)이라는 한자가 나왔다.


  이제 죽간에 문자를 적어 넣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죽간은 대나무를 세로로 쪼갠 것을 다듬은 후 이것들을 세로로 세워 옆으로 늘어놓고 이것을 엮은 것이다. 대나무를 세로로 쪼갠 것이기에 문자도 세로로 적어나가게 된다. 즉 죽간에는 세로로 적는 것이므로 종서이다. 따라서 한문은 종서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죽간에 글을 적어놓을 때 죽간을 놓는 위치를 생각해보자. 죽간을 왼쪽에 쌓아놓는 것이 편리할까, 아니면 오른쪽에 쌓아놓는 것이 편리할까? 왼쪽이다. 만약 죽간을 오른쪽에 쌓아놓는다면 죽간에 문자를 적을 때 그 쌓아놓은 죽간이 손이나 옷소매에 걸린다. 불편하다. 그런데 죽간을 왼쪽에 쌓아놓으면 문자를 적는 오른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즉 죽간을 왼쪽에 쌓아두었기 때문에 문자를 적어 넣을 때 맨 오른쪽의 죽간에서 시작해서 한 줄을 다 적고 나면 다음 왼쪽에 있는 죽간에 글을 적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죽간에 적어나간 한문의 행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도 이 방식은 유지되어서 두루마리 시절에도 한문은 그렇게 계속 적어갔다.


  즉 한문을 세로로 쓰게 된 것과 한 줄을 다 쓴 후에는 왼쪽으로 옮겨서 다음 줄을 적어 내려가는 것은 모두 죽간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종이가 널리 전파되고 나서 책의 형태로 제본이 되기 전에 그 종이를 보관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이 두루마리였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도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 동양은 문자를 세로로 적는 종서이고 서양은 가로로 적는 횡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나 TV에서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때에 우리나라나 중국을 배경으로 할 때에는 두루마리를 옆으로 즉 좌우로 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서양을 배경으로 할 때에는 두루마리를 세로로 즉 위아래로 편다. 이게 다 문자를 적어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의 종서와 서양의 횡서.



  물론 서양에서도 좌우로 펴는 두루마리가 있다. 종교 경전의 경우이다. 이 경우는 양이 방대하고 또 거기에 글자를 적을 때 온갖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매우 정연하게 세로로 문단을 나누어가면서 쓰기 것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세로로 문단을 정교하게 나누는 것이 힘들어서 좌우로 펴는 두루마리를 쓰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동양에서도 세로로 펴는 두루마리가 있다. 이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의 글을 적어 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글자를 예술적으로 적거나(서예) 그림을 그리고 난 후 보관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된 것이다. 족자(簇子)라는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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