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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솔 깨부맘 Feb 28. 2023

잘못된 인정욕구는 끝내 채워지지 않더라

사람은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인정욕구가 있다. 예전에는 인정욕구가 강했다. 게다가 인정을 받기 위해 누군가에게서, 어딘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에 맞추기 일쑤였다. 인정받는 것이 사랑받는 것인 줄 알았다. 사랑과 인정을 분리하지 못하고 하나인 냥 속앓이를 한 적도 셀 수없이 많다.


  스물둘, 타지에서 자리 잡으려 한 초창기였다.

  타지이다 보니 연고도 없었고, 아는 이도 없었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기간제로 TM 일을 하며 성대결절을 겪었다. 소리를 내는데 소리가 안 나왔다. 업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됐기에 약을 먹으며 온몸의 힘을 끌어 모아 수없이 말했다. 이후 목소리가 많이 변하고 금방 쉰 소리가 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기간이 만료되며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지역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정부지원으로 교육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곳이 운 좋게도 집과 가깝기까지 했다. 필요 서류들을 챙겨 훈련생 등록을 하러 갔다. 그날 깔끔하게 면접 복장을 갖추고 갔다. 의자에 앉아있던 어떤 여성분이 나를 맞았고 맞은편에 앉아 접수를 받았다. 그런 과정 중에 지긋한 나이를 먹은 남성분이 다가와 그 여직원을 보내고, 내 앞에 앉고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훈련생 접수는 끝난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의문이 들었다. ‘왜 이런 말들을 공들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직업훈련생으로 등록하기 때문에 면접 같은 건가?’ ‘뭘 말하고 싶은 거고, 내가 무슨 반응을 해줘야 하는 거지?’


  남성분의 이야기에 고개도 끄덕이고, 미소도 띠며 반응한 시간이 꽤 된 그때, 본론이 그제야 나왔다. 직업훈련원에서 여직원을 구인 중에 있으니 훈련생이 아닌 직원으로 출근 가능하겠느냐. 이거였다.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기분 나쁠 상황이 아니었다. 얼결에 취업을 하다 보니 어리둥절했다. 출근하기로 이야기가 되고 드디어 남성분은 나를 보내주려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2시간이 더 넘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도착하여 저녁을 챙겨 먹었다. 얼떨떨했다. 이렇게도 취업이 되는구나 싶은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그로 며칠 후 달이 바뀌어 1일이 되고 출근을 했다. 접수하던 날의 남성분은 훈련원장 바로 아래 직급인 교학처장님이라고 했다. 처장님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유니폼을 맞추는 곳이었다. 유니폼은 내가 면접 때 입은 옷의 스타일과 비슷한 것이었다. 일을 배우고, 기록했다. 나 역시 훈련생 접수를 하려고 준비해 보았기에 서류와 준비과정, 심리 등이 알 수 있었고, 일을 배워 상담할 때 도움이 되었다. 선임자인 여직원 옆에 앉아 훈련생 접수를 보조하며 배웠다. 홀로 훈련생 접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업무들도 배우며 해나갔다. 시간이 지나 익숙하게 훈련생 접수, 상담, 관리 업무를 하며 일반 사무 업무 등을 무난히 해내고 있었다. 


  선임자가 임신을 하여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선임자의 출산으로 업무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던 거란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출산으로 휴가를 들어가기 직전 돈과 관련된 정부 지원금을 받는 업무며 훈련과정을 신청하고 관리하는 업무며 일체의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


  모든 것을 집중해서 듣고, 기록하며 실수가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부지원 과정이었기에 신청할 수 있는 시기가 따로 있었고, 훈련수당과 훈련진행에 따른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신청기한도 정해져 있었다. 훈련이 여러 가지였고, 훈련 기한마다 신청기한이 달라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선임자는 출산휴가로 자리를 비우고 있기 때문에 선임자에게 모르는 것을 묻거나, 결정을 묻거나 하는 것은 방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인수인계받았으니 내가 실수 없이 해내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실수나 누락 없이 일 처리를 해내고 있었다. 몇 달 뒤 선임자가 돌아왔을 때 무척 반가웠다. 혼자 그 모든 업무를 해내느라 너무나 바빴고, 무게 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내가 선임자의 빈자리를 무난히 채워놓은 것에 대한 칭찬과 인정이 아닌 이유 모를 짓궂음과 냉대였다.




  이유를 몰라서 눈치를 보며 눈치껏 행동을 더욱 빠릿빠릿하게 했다. 한동안 그러했으나 선임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대화를 요청했다. 솔직하게 물었다. “출산 후 돌아오시고 너무 좋았어요. 출산휴가 가 계시는 동안 신경 덜 쓰시게 실수 안 하고, 하라는 일 빠트리지 않고 챙겨서 한다고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차갑게 대하시는 게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선임자는 피식 미소 짓더니 “그렇게 느꼈어? 아냐 그런 거 없어”라고 말했다. 그 이상 다른 말도 없었다. 대화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출산 전 관계와 완전 다른 관계였고, 차갑고 두꺼운 벽을 쳐놓고 있었다.

선임자의 냉대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지쳐서 힘든 나머지 퇴사를 결심하고, 결국은 이 훈련원에 온 처음 목적이었던 전문직의 전향을 목적으로 다른 훈련원을 통해 프로그래머 과정을 등록하여 배웠다. 한 번으로 부족해 일했던 훈련원을 직원이 아닌 훈련생으로 다녔다.


  6개월 과정을 두 번 진행한 뒤, 스스로 이력서를 냈고, 면접을 보고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정직원으로 채용되며 전문직으로의 전향을 이뤄냈다.


  선임자에게 인정받고 싶었다는 것을 한참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 인정에는 내가 해낸 일에 대한 인정도 있었고, 마음을 써준 것에 대한 인정도 있었고, 해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인정도 있었다.


  인정이 아닌 냉대가 돌아왔기에, 어린아이 시절에 내재된 무의식에 있던 불안감이 상기되었던 상황이었다. 그때도 나의 불안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아보기보다 선임자의 눈치만 보고 맞추느라 바빴다.


  게다가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 오로지 이것을 위해 노력한 시간과 마음이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기에 누군가가 나를 시기할 것이라고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 인정받는 것이어서 냉대만 하지 않았어도, 특별 나지도 않게 평소처럼만 지냈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났기에 뒤늦게 훗날에라도 내 안의 인정 욕구를 알 수 있었고, 일에 대한 인정과 능력에 대한 인정, 사람 됨됨이에 대한 인정은 그냥 ‘나’로 인정받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일과 해낸 일에서 인정받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는 것. 이 둘이 다름을 알고, 분리시키는 것을 이제 제대로 시작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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