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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명선
Feb 28. 2023
입맛대로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라이프도 돈이 든다
몇 년 전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은
가입 인사 대신 필수 미션으로 한 달 동안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인증 글을 올려야 했다.
나도 신입의 열의를 가지고 하루에 하나 이상 버리면서 글을 썼다.
-데이 1,
몇 년간 입지 않은 스커트를 버렸어요.
살
빼고
입으
려고
했는데
살
빠지면 더 예쁜 걸
살
래요.
-데이 2,
결혼할 때 샀
던
와인잔 세트를 버렸어요.
색깔과 무늬가 들어가 올드해 보여 안 쓰
면
서도
비싼 거라 못 버렸었는데 과감히 버리고 나니 시원합니다.
그런데 글의 조회수는 올라갔지만 아무도 이 '신입이'에게 칭찬과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 어쩌다 달린 댓글도 내용에 대한 질문 따위였다.
좀 기운이 빠져버렸다. 뭐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실천하는데 미니멀리스트 선배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무심하다니.
며칠 후에야 이런 공지를 발견했다.
-
그리고 저희 카페는 회원의 게시글에 쓸데없는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그런 댓글도 불필요한 것이니까요.
올해를 미니멀리스트 원년으로 정했다.
미니멀 라이프 카페의 선배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선정해 집 앞 도서관에서 여섯 권, 이웃 도서관에서 세 권까지 총 아홉 권의 책을 빌렸다.
두 주 동안 책들을 읽으며 미니멀 라이프의 자세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 방법 중에 내가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뽑았다.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규정과 삶의 모습은 사람마다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다.
-
나 자신에게 불필요한 물건이 없는 환경 만들기 그리고 그 안에서 내적으로 충만하고 성장하기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보기만 해도, 화장대 서랍 한 칸을 열어보기만 해도 쓰지 않는 물건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이 상황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
미니멀라이프의 바이블들, 이를테면
미니멀리스트는 꼭 갖고 싶은 물건을 참거나, 필요한 물건인데도 사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맘에 쏙 들고 오래 쓸 물건을
사
기 때문에
비
싸고 좋은 물건을
소유할
확률이 높다.
이를테면, 요리 도구로 플라스틱 볼을 대중소 사이즈별로 구비하는 대신, 견고한 304 재질에다 밑바닥에 미끄럼방지용 실리콘이 단단히 붙은 스테인리스 볼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다.
조리용 젓가락과 스푼을 여러 개 두는 것이 아니라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장인 정신으로 만든 나무젓가락 한 벌을 제 값 주고 사서 오일을 발라가며 오래도록 손에 익혀 쓰는 것이다.
물건의 개수는 하나지만 구입과 유지 비용은 몇 배로 들 수도 있으니 미니멀라이프가 돈이 덜 드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늘 동경했던 미니멀라이프를 올해는 실현하리라 다짐한다.
미니멀한 초봄의 시작인 어제도 새 물건을 사 들인 나 자신이 살짝 불길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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