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Nov 09. 2024

시세에 대한 가벼운 생각

 차량 번호를 넣으면 중고차 시세가 나오는 어플 보니 우리 차의 시세가 2,3 백 남편이 톡을 보냈다. 원래 내 차 시세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터무니없는 금액었다.

 어떤 근거로 그런 계산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단순 조회 가격은 내 차와 동일 연식+동일 형식+주행 거리 가진 차량의 거래 데이터로 산출되는데 이 금액은 중고차 업체의 예상 매입가다. 매입가는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갭이 크지는 않다.

 그리고 조회 결과 아래에는 '중고차는 자동차별 상태에 따라 편차가 큰 만큼 실제 견적은 더 나올 수도 덜 나올 수도 있습니다'라는, 있으나마나 한 참고사항도 붙어있었다.   

  

 우리 올군(차의 애칭)은 연식으로는 10년이 넘었지만 7만 킬로밖에 안 탔고(보통 1년에 15000~20000 킬로를 운행한다고 가정하므로 평균의 절반 이하 수준) 경유 차라 연비도 좋다. 디젤의 특성상 소음이 좀 유난스러울 뿐 여전히 기운은 쌩쌩하다. 지난달에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전체 점검을 받았는데 엔진 오일만 교체해 주고 딱히 손 볼 곳이 없으니 마음 편히 타라는 말을 들었는데, 흔한 명품백 하나 값도 쳐주지 않는다니 서운했다.

 우리 차는 10년이 넘도록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무거운 짐도 날라 주는 착한 애다. 5년 전 나란히 2열 좌회전을 하는데 차선을 넘어 버린 상대차량에 옆구리를 받힌 첫 접촉사고 때도 우리 과실을 0으로 나오게 한 예쁜 놈이다.

 

 그런데 뭐 딸랑 이백?

 올군아, 못 들은 걸로 해라. 아줌마가 책정한 시세로 친다면 넌 3천만 원어치도 넘다.





 동네 횟집 시즌 메뉴의 시가는 알 수 없지만 전국의 아파트는 현재 시세가 얼마인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 외에 코인 시세, 금 시세, 주식 시세 등은 굳이 내가 알고 싶지 않아도 매일 들리는 뉴스와 대화에 꼭 끼어있다.

 

 갑자기 중고차 시세에서 촉발된 상상의 꼬리가 길어진다.

 고전소설 <심청전>의 여주인공 심청은 공양미 3백 석을 받고 뱃머리에 올라섰는데 심청의 목숨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억 5천이라는 주장부터 150억에 이른다는 계산 있다.

 만약 현대에 그런 '사람의 시세'를 매기는 어플이 나온다면 어떨까?

 운동선수, 연예인의 몸값이나 직장인들의 연봉협상아니라 중고차처럼 누구든지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계산돼 나오는 시세 말이다.  

 도덕성, 유머감각, 인품 같은 정성 평가 항목은 제외하고 오로지 나이, 외모, 수입 등 정량적인 기준으로만 등급을 따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과에 만족할는지 궁금하다.

 앱 개발자가 '그냥 오늘의 띠별 운세를 보듯 재미 삼아 나의 시세를 조회하는 게임 같은 어플'이라 강조한대도 사회에는 적잖은 여진이 밀려올 것이다.

 '제 시세가 글쎄 00억이라네요' 하며 이 참에 자랑하고 싶은 것들을 곁들이는 포스팅, 자기 시세는 쏙 빼고 연인이나 자녀, 일가친척의 시세까지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우하향 하는 시세 그래프를 보고 삶의 의지를 잃는 중대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나는 나이 많고 별다른 능력도 없고 지병이 있는데 수입은 없으니 '시장 거래 불가'로 뜬다. 그러면 가족들은 '엄마는 우리에게 세상 누구보다 비싼 사람이야'라며 위안을 해 주겠지.

 인간의 시세를 따지는 지구 모은,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돈이 아닌 시간으로 모든 것을 지불하는 세상'만큼이나 혼란스럽고 절박한 난리법석 것이다.

 사실 '시세'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금전적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는 많다.

 아부지 뭐 하시냐, 어디 사냐, 직업이 뭐냐 등을 기준으로 상대를 다르게 대하는 세태 그렇다.


 단지 내 차 시세 조회 같은 노골적인 서비스가 없을 뿐이다.



 

 우리는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서로 뽐내고 부러워하고 굴복하거나 무시한다. 숫자로 표기할 수 없는 가치들은 비교하기가 힘들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좋은 동네에 살고 스타일이 좋고 돈이 많은지는 곧바로 보이지만 인정이 많은지 생각이 깊은지는 오래 만나도 쉽게 드러나지 않 때문이다.

 다들 나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자신이 초라하고 기운이 빠지는 건  당연하다.

 누군가가 부러울 때는 순수하게 부러워  역시 그 사람과는 다른 것을 충분히 가졌다는 사실잊지 자.


  인생은 그냥 다 밸런스 게임인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개발 지역의 이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