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콩 한 움큼

여름다운 채소

by 이명선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간 중식당에서 그린빈스 볶음을 먹었다. 새파란 그린빈스와 새빨간 건고추가 어우러진 크리스마스적 보색 대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었고 먹어보니 맛도 좋고 식감도 재미있었다.

직원이 요리를 내오면서 '고추는 너무 매우니 드시지 마세요'라고 했는데 그 점은 아쉬웠다. 아무리 맛을 내는 용도라지만 요리의 절반이 고추였고 가격이 25000원인데 반을 먹지 말고 그냥 보고 남기라니!

그럼 좀 덜 매운 고추로 만들어 주지 싶었다.


주부들은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여기에 뭐가 들었나,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나 분석하며 먹는다. 집에서 꼭 해 보는 이들도 있다. 그날의 그린빈스 볶음도 단짠한 양념과 오독한 식감이 인상적이어서 한 번쯤 식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었다.


친구가 찍은 그린빈스 볶음


여름 반찬을 고민하다가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국내산 그린빈스를 샀다. 한 줌쯤 되는 100그램에 3500원이다. 그린빈스는 줄기콩 혹은 껍질콩이라 부르는데 초여름부터 초가을이 제철이다. 보통 가정의 부엌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많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길쭉한 껍질을 열면 완두콩처럼 생겼지만 더 작고 납작한 콩알들이 조르륵 들어있다. 껍질을 버리고 속열매만 먹는 콩류과 달리 껍질 즉 줄기째 요리를 한다.

껍질콩은 우리나라 재래종은 아니고 현대에 들어 식재료로 재배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꺼운 콩껍질을 벗겨내고 안에 든 콩만 골라 먹었다.

(콩깍지는 렌즈처럼 눈에 끼는 것이지 먹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껍질이 얇고 보드라운 외래종인 껍질콩은 익혀서 다른 채소들과 함께 샐러드로 먹어도 되고 그때 중식당처럼 고추와 편마늘을 더해서 굴소스를 넣고 볶으면 이색적인 반찬 한 접시가 된다. 단, 생콩이기 때문에 볶기 전에 살짝 데쳐야 한다.


껍질콩 한 움큼 중 세 개를 쪄서 남편의 목공학교 도시락에 쌌다. 껍질콩을 데칠까 하다가 다른 재료를 찔 때 함께 넣었다. 껍질콩을 찌는 게 처음이라서 적당히 익어 보일 때 끝부분을 잘라먹어봤다. 먹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맨날 넣는 도시락 멤버들 외에 새로운 재료가 있을 거라고 말해놨으니 오늘 도시락을 열면 살짝 색다를 것이다.


도시락계의 뉴페이스 껍질콩


원래도 하기 싫은 밥이 더워서 더 하기 싫다.

한여름에도 이열치열로 얼큰하고 뜨거운 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만 불 앞에서 일하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식사 준비할 때 내가 덥지 않은 음식을 연구하게 된다.

사실 모두에게 좋은 여름 반찬은 별 거 없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은 찬물에 밥을 말아서 고추, 오이를 쌈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오이지 냉국, 열무물김치 같은 것을 자주 먹었다. 오이지는 아직까지 그 맛을 모르겠는데 시원하게 찬물에 만 밥 한 숟갈을 물고 생오이, 생고추를 잘라먹으면 진짜 여름 한 끼로 딱이다.

남은 껍질콩을 어떻게 먹을까 생각한다. 이도저도 귀찮으면 그냥 쪄서 도시락에 넣어야겠다.


껍질콩 한 움큼과 함께 여름이 덜컥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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