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쓰기 공부를 하며 사람의 생각은 정말로 각양각색임을 깨닫는다. 나는 재미있게 읽은 글을 보고 어디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고, 나는 흔한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는데 기발하다는 평이 붙기도 한다.
보편성이 대체 어떤 건지 점점 혼미해진다.
요즘 하는 TV 주말드라마 중에 CI 보험금을 받을 만한 중대한 질병이 연속으로 발병하고, 등장인물은 혼자 있을 때마다 독백을 하고, 툭하면 회상과 과거 장면으로 넘어가는 작품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8주 간의 드라마 수업에서 선생님이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기법들이다. 찾아보니 이미 인기 드라마를 많이 쓰고 큰 상도 여러 차례 받은 대형 작가가 대본을 썼다.
현실상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해도 뻔한 우연과 설정, 가장 쉽다는 독백과 회상 씬이 여전히 먹히고, 결국 시청률을 올리는 방법이라면 왜 선생님은 우리에게 쓰지 말라는 걸까?
30년 베스트 드라이버에게 내일 운전면허 주행시험을 다시 보라고 하면 바로 탈락이라더니 그런 비슷한 종류인가 보다. 운전을 배울 때는 정석으로 타이트하게 우회전 일시정지, 앞지르기 금지 같은 도로교통법을 다 지키며 배우고 일단 면허를 따고 내 차를 몰 때는 '아이고, 먼저 갑니다아'하며 슬쩍 가는 것처럼?
이제 갈등이 마무리되는 단계에 접어든 듯한 그 드라마는 총 50부작이었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장편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미니시리즈도 아닌 50회 분의 드라마를 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능력임은 분명하다.
씬을 절약하라
씬 넘버 1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 선생님은 씬을 아끼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한 장면으로 여러 정보를 한 번에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 전개에서 불필요한 씬은 없애라는 말과도 통한다.
예전에 어떤 미드에서 본 장면이 기억난다.
주인공인 수사관이 살인사건 피해자의 집을 방문했다. 수사관은 냉장고에 붙여진 사진과 마그넷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피해자의 가족 구성원, 직업, 최근 여행지 등의 정보를 캐치하였다. 눈치 빠른 시청자는 주인공의 눈을 따라 훑는 카메라를 통해 동등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면 작가는 씬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60분 단막극 70개 씬을 지어내기도 힘든데 아끼기까지 해야 되나 싶다.
결정적인 역할은 주인공에게 주어라
드라마는 '누구의 이야기인가'가 무척 중요하다.
드라마의 시점은 소설의 시점과는 다르다. 소설의 1인칭 시점은 주인공이 없는 곳의 사건이나 장면은 직접적으로 나올 수 없고 누구를 통해 듣거나 어떤 매개체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독자는 주인공과 똑같이 알거나 똑같이 모른다.
그러나 드라마는 주인공의 나레이션으로 극을 이끈다고 해도 주인공이 없는 곳의 장면까지 자유롭게 보여준다. 이런 특징은 자칫 '이것이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중심을 흔들 수 있다.
작가는 언제나 주인공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주인공은 강하지만 약한 면이 있고 갈등하고 영향을 주고 결국 변화하고 갈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월 중순에 시작한 드라마 과정이 어느새 3분의 1이나 지났다. 교육원에 가기 전까지 드라마 작가에 대해 가졌던 내 생각을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다.
드라마를 보며 '저 정도는 나도 쓰겠다'라고 하거나, 문득 소재가 생각나면 '오, 이거 드라마 한 편 쓰기 좋은데' 이런 헛소리들을 남발했다.
공부를 해 보니 내 머리에 떠오른 이야깃거리를 한 편의 대본으로 탈고하려면 최소 육 개월은 걸릴 것 같다.
아니다. 진짜로 단막극 대본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두 달 후의 나는 머리카락을 뜯으며 오늘의 이 말도 부끄러워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