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전, 많이 늦은 나이에 작가교육원 수강을 시작하며 굳게 다짐한 것이 있다.
동기들에게 모범은 못 되더라도 민폐는 끼치지 말자, 나이로는 내 자녀 같고 조카 같을 사람들에게 50대 여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겨주자.
전체 커리큘럼의 반을 넘은 현재까지 잘하고 있다. 우리 조장님이 작가가 꿈이라는 자기 어머니에게 내 얘기를 했단다. 뿌듯한 마음 반에다 머쓱한 마음도 반이었다.
선생님이 여담으로 작가의 장애에 대해 말씀하셨다.
좋아하는 글쓰기에만 올인할 수 없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장애, 육아나 가정의 장애, 가족 혹은 연인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장애 등등 말 그대로 사바사였다.
나의 장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이' 밖에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치열한 일상이 주는 장애가 끝난 시점에서는 이미 인생이 많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한낱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왜 장애라고 하냐'라며 노련한 암사자의 심장을 가지라고 외치겠지만 나이는 분명한 장애다. 하루가 다른 노안이 장애고 지병이 장애고 사회적 인식의 허용 범위가 장애다.
이렇게 각자 다른 모양의 장애를 안고 우리들은 매주 글쓰기 수업에 모인다.
이번 주에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드라마 작법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글쓰기의 태도와 영감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뤘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독자가 호감을 느끼는 인물이어야 하고 반드시 결점이 있어야 한다. 잘 생기고 키 크고 능력 있고 인간성 좋고 돈도 잘 벌고 행복하며 이타적이며 모든 면이 완벽한 주인공은 진정한 응원을 받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인물이 가진 결점 때문에 그를 공감하고 결국에는 그 결점을 극복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지켜본다.
예전 수업 시간에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나약함과 소망을 가진 인물에게 공감을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어떤 갈등을 겪으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대본에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사실 말하기는 쉽지만 담아내기는 어렵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심리 변화와 사건은 무척 강렬해야 한다. 나는 극적이고 강력한 장면을 하루 종일 연구하지만 너무 심심하게 살아온 탓인지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 상상만으로는 힘에 부친달까.
마음먹고 등장인물들의 액션을 강하게 표현하다 보면 어딘지 과장스럽고 뻔하고 억지스럽다. 읽는 내가 오글거려서 결국 그 문단을 날리고 매번 중용의 길로 유턴한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웹소설 작가인 동기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했다. 그녀는 나에게 "'극'의 한자(劇)를 해체해 보면 호랑이도 나오고 돼지도 나오고 칼도 나오는 난리부르스"라고 말했다.
'극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일상의 따분함이나 잔잔함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꼭 사무실 바닥에 서류 뭉치를 흩으러 뜨리고, 여자주인공이 넘어질 때면 남자주인공이 가까스로 안으면서 서로 바라보고, 카페에서는 물컵을 잡아 상대의 얼굴에 뿌리고, 엄청난 경적소리와 함께 트럭에 치이는 것일까.
하긴, 서류를 안전하게 옮기고 여자주인공이 넘어지면 숨어서 살짝 웃고 카페에서 주변을 의식해 목소리를 낮춰서 다툰다면 극적인 것은 아닌 게 맞다.
김치 싸대기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가 다 있다.
내 원고지 위에서 호랑이와 돼지가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 대본 수정 기간 동안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