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4. 미래지향적 잔소리

by 이명선


내가 작가교육원 개론반 수업을 듣고 있다고 얘기하면, 실은 자기도 드라마 쓰기에 관심이 있다며 반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 보라고, 당장 다음 개강 때 지원서를 넣으라고 말한다.

운전을 해 보고는 싶은데 나이가 많아 포기한다는 친구에게 '지금부터 시작해서 십 년만 운전해도 실컷 하는데 왜 안 하냐'고 말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역시 늦은 것이라는 말도 맞지만, 이미 늦었다고 해서 아예 시작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그 시작 여부를 자신이 정할 수 있다면 시기는 문제가 될 수 없다.

어쩌면 이런 격려는 늦깎이 습작생인 내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공무원 시험과 각종 고시에 장수생이 있듯 작가 지망생으로만 몇 년 혹은 10년 이상을 보내는 사람들도 꽤 많다. 냉정하게 말해 내가 환갑이 넘을 때까지 작가지망생으로 살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기운 빠지게 하는 현실이지만, 나의 인생 책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처럼 '살면서 멋있는 작품 딱 하나'만 남기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하면 그것도 멋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몇 년 이상 습작에 매달리고 공모전에 계속 도전하면서 써내는 대본이 한 사람 당 수십 편에는 이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수업 중에 선생님이 자신이 입봉(쓴 대본이 제작되어 실제로 방송되는 것) 하기 전까지 500여 편 정도의 대본을 썼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500은 뜻밖의 숫자였다.

각기 다른 작품 500개가 아니라 한 작품의 수정버전까지 모두 카운트하신 것이 아닐까 한다.

초초초보인 나는 처음 쓰는 대본의 세세한 수정만 한 달째 하는 중이다. 파일을 열 때마다 어떻게 꼭 하나씩 고칠 게 나오는지, 마치 거울 앞에서 발견하는 흰 머리카락 같다.



그래도 콘텐츠는 살아남는다

요즘 지상파 드라마의 소비자는 대부분 중년 이상 세대인 것 같다. 앞으로 티브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티브이 드라마 아니 우리가 떠올리는 '드라마'라는 형식이 영영 사라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듣고 보고 전하는 스토리 즉 콘텐츠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담고 전달하는 그릇의 모양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저 오랜 옛날 음유시인, 이야기꾼 등 구비문학 전달자의 입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그릇은 라디오와 티브이를 거쳐 현재의 OTT와 유튜브로 모양틀을 바꾸면서 콘텐츠를 담아내고 있다.


선생님은 콘텐츠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드라마 쓰기를 공부한다고 FM 루트인 공모전에만 올인하지 말고 어떤 형식으로든 바꿔서 세상에 낼 수 있는 좋은 텍스트를 소설의 형식으로 쓸 것, 그리고 그것이 내 것임을 보증하도록 공개적인 곳(대형 플랫폼이든 내 블로그든)에 차곡차곡 쌓아두기를 권유하셨다.

부동산 열기와 함께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최근에 드라마로 방영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도 처음엔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던 소설 방식의 콘텐츠였다.

화법은 다르다고 해도 순수문학이든 드라마와 영화든 웹툰과 웹소설이든 심지어 숏폼에서도 그 안에 담겨야 하는 것은 사람들을 끄는 이야기여야 한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스토리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말은 무겁게 와닿는다.




지난 11월부터 시작한 작가교육원 수업이 3분의 2 지점을 지났다.

개론반 교실에 처음 입장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주식 차트처럼 수치로 표시할 수는 없지만 많이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개론반 3분의 1 남았다는 것은 이번 과정이 끝나간다는 말이고 서서히 다음 반 진학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나는 갖고 싶은 것을 사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있는 만만치 않은 돈을 계속 글쓰기 공부에 투자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과자를 까먹으며 내킬 때마다 책상에 앉는 나는 나태한 습작생이다.

부디 고민하기와 글쓰기 모두 더더더 열심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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