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5. 더 경험할 것 없는 인생이라도

by 이명선

스릴러의 제왕 스티븐 킹은 자신의 소설이 영화, 드라마로 가장 많이 영상화된 작가로 기네스 북에 올랐다. 총 70여 편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일상에서 보고 겪고 듣는 것들을 소재와 플롯으로 풍부하게 활용한다. 예를 들어, 낯선 동네의 주유소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적어두었다가 어느 스토리에서든 그게 들어갈 적절한 순간에 알맞게 인물과 배경을 살짝 변주하여 쓰는 식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도 반백 년 이상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생각하고 후회한 것들 중 재미있는 것을 착착 꺼내 잘 얽고 잘 섞으면 이야기 몇 개가 뚝딱 나올 것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서랍이나 파일에 인덱스로 정리돼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만 피스도 아닌 십만 피스쯤 되는 자잘한 퍼즐 조각들이 크고 작은 자루에 아무렇게나 쓸어 담겨 창고에 던져진 상태나 다름없다.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절망적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을 생각하면 <인사이드 아웃>의 장기기억저장소에 가득한 유리구슬이 떠오른다.

아... 라일리의 옛 친구 빙봉이 자기 무게 때문에 수레가 벼랑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수레에서 뛰어내려 소멸되는 장면은 너무 슬펐다.


열다섯 번째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나는 한껏 길어진 오후 햇빛을 보면서 '이제 경험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불쑥 했다.

나는 아직도 인풋이 모자라서 내보낼 게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캐릭터별 대사

사람들은 저마다 말투나 말버릇, 주로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다.

그것이 개성이고 개그맨들이 특정인을 성대모사할 수 있는 근거도 개성 덕이다.

드라마 대본에 구현되는 대사를 생활감 있는 구어체로 써야 하는 것은 완전 기본이고 인물 별로 대사마다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즉, 대본에서 등장인물이 누군지 보지 않고 대사만 봐도 누가 하는 말인지 알 수 있게 써야 한다.

어쩐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을 떠올리면 그 말투가 귓가에 저절로 떠오르더라니!



반복과 중복

반복과 중복은 다르다.

스토리의 다른 맥락에서 같은 요소가 재등장하는 반복은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와 감정을 레이어로 쌓아간다. 그래서 '반복'하면 '강조'가 된다.

그러나 중복은 순기능이 없이 그저 겹치는 오류이며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목적이 같은 장면과 대사처럼 표면적 중복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대사에서 표현한 것을 지문에 다시 쓴다거나, 인물이 행동으로 또 하는 것도 중복이다.

대본에서 의미를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그다음이 대사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슬레이트를 치면서 '액션!'이라고 하는 건가 보다.



선생님은 시청자가 몰라도 되는 장면은 대본에 넣지 말라시는데 나는 아직은 어떤 장면을 시청자가 몰라도 되는지, 어떤 씬은 꼭 보여줘야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역시 내가 한창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개론반 스물한 개의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그때의 내가 가질 고민은 오늘의 고민보다는 좀 더 정제되고 필요한 것이리라 기대한다.


경험에 관해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이미 해 본 경험에서 화석 발굴하기다. 지나간 기록과 사진을 찾아보면서 그동안 마구잡이로 버려둔 소중한 경험들을 정리한다.

두 번째는 역시 새로운 경험 하기다. 아무리 반백 년을 살았지만 그때의 느릿느릿한 시간과 달리 한 나절이 다르게 변하는 지금의 새로운 경험을 소홀하지 말아야지.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바이브 코딩으로 내 홈페이지 만들기, 다른 하나는 웹툰 그리기 수업 듣기다.

웹툰 강좌는 내일 오전에 온라인 접수하는 무료 강좌에 도전할 예정인데 선착순이다.

과연 15명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