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남자친구를 만나다 - 큰딸 편
작은딸 커플과의 첫 만남이 있고 한 달 뒤, 나는 우리 동네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 창가 테이블에서 또 다른 커플, 큰딸과 남자친구를 보고 있었다.
자꾸 웃음이 났다.
사진으로만 본 남자애(라고 부르기엔 낼모레 서른)는 사진과 거의 똑같았고 듣던 대로 붙임성이 좋고 싹싹하고 잘 웃었다.
게다가 그 애는 우리 부부 앞에서도 내내 큰딸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좋아한다는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마터면 나는 '아쭈, 이 녀석 보게? 어른들 앞에서' 하는 꼰대스런 생각을 발설할 뻔했다.
남편은 나중에 말하길, 그렇게 대놓고 꿀을 질질 흘리는 녀석이 보기 좋았단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은 이제 영 틀린 거다.
언니의 남친을 미리 만난 적이 있는 작은딸은 '이제 갓 1주년 된 커플이라 그렇다'고 진단했고 그 말은 얼마간 맞을 것이다.
큰딸 커플은 직장에서 같은 팀의 다른 유닛으로 일하며 만났다. 한 팀에 100명 가까이 있었다니까 회사에서의 접점은 별로 없었고 서로 '일 잘하는 내 또래 남자, 여자'구나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친이 같은 회사 내 다른 법인으로 이동해서 근무지가 바뀌었다. 그래도 남친의 직장과 집의 중간 지점에 딸의 직장과 집이 있어서 평일 저녁에도 데이트를 할 수 있다며 좋아라 했다.
그날이 떠오른다.
큰딸이 와서 남편과 셋이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테이블에 커피 석 잔을 놓고 큰딸이 갑자기 할 말이 있다더니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당시에 우리 부부는 20대가 다 가버리기 전에 큰애가 연애를 좀 하기를 바라던 때여서 갑작스러운 고백이 무척 기뻤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궁금한 것을 하나씩 물었다. 딸이 연애를 한다는 게 좋아서였는지 그저 다 맘에 들었다. 딸보다 한 살 많다는 것도 좋았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좋았고, 본가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 딸을 좋아한다니 여자 보는 눈이 있는 애구나 싶어 기특했다.
우리를 만나는 날, 딸의 남친은 커다란 꽃다발과 드립백 커피 선물세트를 들고 왔다. 겨울비가 오는 쌀쌀한 날이었는데 우산까지 쓰고 오느라 꽤 번거로웠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나와 큰딸은 장녀고 남편과 남친은 막내아들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에 큰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한 하루가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두 딸의 남친을 모두 만나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둘 다 착실하고 바른 청년들이었고 딸 가진 엄마 입장에서 '이 만남은 반댈세'라고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다만 나는 속 깊은 큰딸과 싹싹한 남친이 앞으로 1, 2년 더 길게 만나기를 바란다.
한 번도 안 싸워봤다니 이유가 뭐가 되었든 서로에게 실망하고 다투기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20년 이상을 나와 다른 환경에서 나와 다른 고민을 하며 살아온 상대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양보하고 합의하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
연애를 길게 한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짧게 연애하고 잘 살기도 하지만, 생판 남인 남녀가 사랑에 푹 빠졌다가 더 나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전자가 높지 않을까.
지금 큰딸과 같은 나이에 나는 큰애를 낳았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옛날 할머니처럼 '그 세월이 다 어디로 흘러갔냐'라고 한탄하려다가 답을 깨달았다.
그 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나는 주름이 지고 딸은 자랐다.
30년 세월은 어디로 흘러간 게 아니라 우리에게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