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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y 31. 2023

맥시멀리스트도 괜찮아요

 당신의 심신만 건강하다면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다가 이사를 한 친구의 집에 가 보고 깜짝 놀랐다.

 이사한 지 3년이 넘는데 집이 여전히 처음 입주했을 때처럼 깔끔했다.

 내가 예전에 본 친구의 집은 현관에서부터 택배 상자와 사철 신발이 쌓여 있고 뜯지 않은 새 냄비와 미리 사놓은 생활용품들이 상자째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당시에는 나도 꽤나 늘어놓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우리 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야말로 다이어트 전과 다이어트 후의 비교 사진처럼 시원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놀러 오는 사람들마다 나처럼, 집이 예쁘다, 좋다 하는 감탄을 할 만큼 친구는 달라진 것이다.   


 올해를 미니멀 원년으로 선언한 나도 한창 과거 청산 작업 중이다.

 집안 이곳저곳을 살피다 만나는 살림들에게 '너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대답이 우물쭈물 면 치워버린다. 예전에는 그런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나도 새싹 미니멀리스트의 자격은 가진 듯하다.  



 

 뱀이 허물 벗어놓고 사라지듯 자기 방을 난장판으로 해 놓고 외출한다고 야단맞던 사람도 독립을 하면 자신 혹은 전체 가족의 공간을 책임지게 된다.

 이때부터 청소 수납 정리에 소질과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드러난다. 당장 정리에 흥미가 없다 해도 이제 주부니까,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하다 보면 차츰 기술이 늘고 나만의 팁도 생긴다.


 그래도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애 키우는 집'이라는 어드밴티지를 받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만 하며 살아도 괜찮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위험성이나 위생의 문제만 없다면 늘어놓은 장난감이나 밀린 설거지거리 정도는 큰 흉이 아니.


 너무 깔끔해서 마음껏 놀 수 없는 집보다 적당히 자유분방한 우리 집 분위기가 아이의 성격 형성에 좋다는 학설을 믿면 된다.

 애들이란 책도 이것저것 늘어놓고 맘대로 펼쳐 보고 벽에 낙서도 좀 하고 인형과 장난감들 틈에서 놀다 지쳐 낮잠도 자면 커야 한다.


얘들의 순수한 기능을 의심하지 말자



 지칠 줄 모르던 아이가 낮잠을 자는 기적적인 순간에 굳이 집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엄마도 함께 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쿠키와 과일을 먹을 수 없는 올화이트인테리어는 나중에 해도 된다.





 아이들이 자기 방을 화장품이나 학용품, 옷으로 잔뜩 어지르 살더라 한편으로는 배우는 점 있다.

 너무 많은 물건들로 내 공간과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고 불편을 느낄 때 스스로 치우게 된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경험해 본 야기일 것이다.

 시험공부를 하려는데 책상 주변이 너무 복잡해서 정리를 시작한다. 서랍에서 친구들과 나눈 쪽지, 옛날 일기장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추억 속으로 빠진다.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정리를 마치면 이번엔 에너지가 고갈되어 공부를 하기가 싫어진다.

 

 이 또한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니다. 공부 시간은 줄었지만 '책상 정리' 업무는 완수했다.

 그러고는 문득, 이렇게 깨끗한 내 방이 더 좋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엄마가 좀 도와주는 게 좋다. 아무리 자기가 늘어놓은 방이라도 에 돌아왔을 때 방이 지저분하면 기분도 좋지 않고 온전히 쉴 수 없다.

 그때는 어쨌든 방정리보다는 우선순위로 해야 사명이 분명하게 있으니 대학교에 갈 때까지는 속으로 욕 하면서 청소와 정리를 해 주었다.

    

 우리가 그랬듯이 성인이 되어 심신의 힘이 커지면 아이들도 조금씩 잘 해나게 된다.


뱀 허물 벗듯 하던 딸이 나름 잘 정리한 첫 기숙사  

 


    



 건강을 잃을 뻔했던 사람이 건강을 더욱 잘 챙긴다.

 후회 없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맥시멀리스트로 살아보기'도 다. 건사하지 못할 만큼 많은 물건에 둘러싸위압을 직접 겪는 것귀중한 경험이다.


 깨끗한 집에서 단순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꽤 많은 비율이 한때 남부럽지 않은 맥시멀라이프를 살았다고 고백한다.

 어릴 때부터 정리잘했다는 사람보다 많은 물건을 그저 쌓아두고도 불편한 줄 모르고 살다가 '어떤 계기'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누가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폭식, 대식보다는 소식이 건강에 좋을 가능성이 많은 것처럼 좋아하는 물건으로만 꾸려져 정돈된 환경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줄 것이다.


 아무리 미니멀라이프가 사람지구에게 더 좋고, 집 한 평의 공간이 얼마짜린데 버리느냐 하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들의 가치가 뭐냐고 질타 해도, 내면으로부터 공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적게 소유하며 살기'는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마음껏 맥시멀리스트로 한번 살아봐야 진정한 미니멀라이프의 기쁨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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