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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 Oct 08. 2019

Kei's meet to U

사소하지 않을 소소한 여행 TMI

"엄마, 나 2월 11일부터는 한국에 없어."

통보를 해버렸다.

의외로 엄마는 덤덤히

"그래, 알아서 해. 그런데 어디 가려고?"


여행의 시작

"Joo, 나 너 보러 갈까?"

여행의 시작은 호주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문득 던진 한마디부터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발리부터 멜버른까지, 출국 비행기 티켓 예약까지 다 끝난 상태. 왜인지 입국 비행기는 한동안 예약하지 않았었다.


17박 18일, 보름 조금 넘고 3주 조금 모자란 기간 동안 발리, 멜버른, 방콕까지 결정하고 난 후에야 나는 입국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발리, 멜버른으로는 부족했었나 싶다.

겨울에 발리에 갈 계획을 짜면서도 여름에는 한 달을 살아 볼까 생각하는 거 보면, 발리에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절대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더니 정말인 듯하다.


발리.
발리라는 공간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았던 곳이면서 힘든 곳이었다.
지난여름,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하며 함께 간 여행 메이트가 물었다.
"Kei, 발리에서 뭐하고 싶어?"
"어... 나는 요가? 카르사 스파를 추천받아서 그것도 해보고는 싶네."
"그거 말고는 없어?"
"으응..."

아마 내 머릿속에는 하루 발리에 사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발리를 (여유롭게) 구경하고, 좋아하는 발리에서 하고 싶었던 요가를 가는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직장인인 내 여행 메이트는 오랜만의 휴가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어 했고, 결과적으로 이미 짜인 빡빡한 일정에 너무 힘들었다.
뭘 하고 싶어란 말에 100 가지도 넘게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여행 메이트와는 반대로 나는 스스로를 잘 몰랐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여행 스타일이 어떤지.

그리고 나를 알고 싶어 졌다.
어쩌면 사소해서 생각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소소하게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라는 것.

발리와 방콕 숙소를 정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숙소를 정할 때 물자리가 참 중요했다.

(뭐라 정의할 단어가 없어 물자리라고 표현했다)

휴양지에서는 하루 종일 들어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수영장 주변 뷰가 필요했고, 도시의 나라에서는 욕조가 숙소를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가를 넓게 다니는 것보다 관광지는 덜 보더라도 한 지역에서 여유롭게 길을 걷고, 버스도 타보고. (하지만 이번에도 꾸라꾸라 버스는 못 탈 것 같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종교, 관습을 모두 담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중요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좀 억울해지고.

잠시 여행지를 빌려 그곳의 사람처럼 느껴보는 것.
앞으로도 스스로 더 알아가야겠지만 내 여행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먼저 뭘 하고 싶은지 함께 가는 친구는 뭘 하고 싶은지, 혼자 가는 방콕에서는 뭘 하고 싶은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리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고, 처음 가보는 곳들은 정보가 필요해서 검색도 해보고, 가이드 북을 사러 서점도 갔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목말랐을까?


지난 여행의 경험으로 추천이라는 단어로 정작 가보면 관광객 가격으로 책정된 비싼 가격, 가득한 관광객으로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들려오는 한국말이 아닐까란 생각.
추천이라는 방대한 정보들은 나를 더 바쁘게 움직이라 자꾸만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발리에서 느긋하게 갈만한 식당들을 몇 곳 알아보던 중이었다. 문득 나 같은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롭게 여행하고, 나는 어떤 느낌을 받는지 생각하고 싶은.
'어?! 내 스타일대로 나만의 가이드 북을 한번 만들어 볼까?'
내 계획부터 경비, 왜 갔는지 내가 뭘 느꼈는지 다시 올지 말지 작성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펜 놓고 그냥 훌쩍 떠나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들지만, 가이드북을 만들어 보겠다며 채우다 보면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요즘 하루하루가 즐거운 건 우기의 발리도, 여유로운 느낌의 멜버른도, 욕조 하나 보고 덜컥 가게 된 방콕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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