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기다리는 시간

by 주아

남편한테서는 늘 저녁 9시쯤 전화가 온다. 어느 날은 9시 3분, 어느 날은 8시 59분.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청소하고,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아 핸드폰을 눌러보면, 8시 30분이 지나있다. 이제부터 나의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된다.


우리는 마음만 함께 있는 부부다. 벌써 3년째 나는 외국에 나와있고, 남편은 한국에 있다. 3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헤어져있다는 사실은 나의 삶을 "전화 가능한 시간"에 맞춰지게 했다. 남편이 자기 전,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기 전, 그리고 점심시간. 다른 시간대에 산다는 것은, 어쩐지 우리를 늘 일정한 시간대 (서로에게 안전한 시간대)에 통화하게 만들고 그래서 이제는 남편과 전화를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9시를 기다리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나는 9시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은 고되다. 눈에 들어오는 뉴스 제목을 다 클릭해 보고, 샤워하다 문득 궁금해진 모든 걸 검색해 본 뒤에도 시간을 보면 여전히 8시 57분 정도이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던 여우의 마음이 이랬을까. 시장에 간 남편을 기다리던 "정읍사"의 백제여인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님 소개팅 후에 관심 있던 그 사람에게 연락 오기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이럴까. 무얼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은 갈망하기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지만 또한 그래서 애처롭다.


9시를 조금 넘은 순간 전화가 온다. 나는 나를 사로잡고 있던 기다림이 가져다준 모든 감정적인 끈끈이들, 고독과 애처로움과 갈망을 통화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끊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날마다 들어간다. 익숙한 기쁨으로 내뱉는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