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잘 싸우는 편이 아닌것을 고려할 때 놀랍게도 성격이 매우 다르다. 여러가지 중에, 내가 정말 그와 다르다 느낄 때는 그의 여운을 느낄 때다. 그의 여운은 대화의 끝이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눈빛이고, 쉼표다.
며칠 전 우리는 유럽의 한 도시에서 만났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와 유럽의 한 도시에서 만난 우리는 공항에서 만나 며칠 후 공항에서 헤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첫 순간에는, 아무리 우리가 몇년 째 부부였다 해도 눈을 마주치기 부끄러운 어색함이 흐른다. 그의 바뀐 샴푸냄새나, 헤어질 때와 완전히 달라진 옷차림으로 드러난 계절의 변화로 인한건지 아님 화상통화에서 평면에서 보던 인물이 삼차원으로 등장하여 말하고 있어서인지 알 수 없는 생경함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닌 척한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이야기는 주로 '잘 지냈어?'가 아니라, '내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이다. 마치 오늘 아침에 헤어졌던 사람처럼. 그리고 잡은 손은 생경함이라는 우리사이에 부푼 풍선의 바람을 빼준다. 풍선의 바람을 빼면서 나는 쉴새업이 말을 한다. 말을 많이하면 이 어색함이 없어질까 싶어서. 남편의 대답이나 반응은 중요치않다는 듯이 이리저리 떠오른는대로 지껄이고 나면 마음의 긴장이 조금 풀리고 남편의 눈빛을 볼 용기가 난다. 그 때 난 여운을 본다.
그 여운은 깊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내 이야기들이 그의 여운 속에 자리를 잡고,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게 된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쉽게 '그래', '응', 하고 그냥 넘기지 않는 고마운 사람. 그 이야기를 계속 생각해줘서 결국 어색함에 부끄러워하며 퐁퐁 날리는 내 이야기들을 잡아 깊은 마음 속 보드라운 곳에 심겨두고 따뜻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깊게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
난 그 여운이 고맙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