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Sep 04. 2023

에반게리온 그리고 추억

대학생 아들과 대화하기

/ 션과의 통화 시리즈 /


가끔 션과 별거 아닌 주제로 한참 수다 떨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마치 10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남자고 여자고 10대 때 친구들과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 그게 하찮더라고 막 열띤 이야기 나누고 까르르 웃고 했던 바로 그 기분 말이다.





션에게 전화가 와서 이틀째 <에반게리온> 이야기를 한다. 이틀 나눠서 드디어 정주행을 마쳤나 보다. 첫날 절반 정도 보고 나서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길래,  내 기억에 에반게리온 마지막 편이 2, 3개 버전이 있었던 것 같아서 (TV판, 극장판) 이야기해 줬더니  오리지널 버전으로 볼 거라고 하더니만, 정주행 마치고 나서는 극장판도 봐야겠다고 했다.

다시 잠시 에니의 세계에 대해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비교하면 아이들이 읽을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그리 가리지는 않다 보니 여러 장르를 읽었는데, 만화책도 있다. 고등학생 때까지 꽤 많은 만화책을 섭렵하며 살았다. 요즘은 웹툰이 대세지만, 어릴 때 읽었던 만화책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에반게리온>은 마치 어릴 때 본 것 같은 착각이 있으나, 생각해 보니 션파와 함께 집에서 비디오로 봤었다. 지금은 사라진 '비디오테이프'말이다. 션은 낳기 전이었으니 신혼 때 봤다는 건데, 2000년 전후해서 봤나 보다. 션파는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특이하게도 이 비디오테이프는 션파가 친구에게 빌려왔었는데  션파는 기억을 전혀 못하고 있다.

오래되어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에반게리온의 분위기와 세계관에 푹 빠져서 상당히 감탄했던 것 같다.

다시 찾아보니 1995년~1996년에 방영되었던 작품이었다.

가바사와 시온의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에서 저자가 호르몬들을 에반게리온의 캐릭터로 비유한 것을 보고 주인공 '레이'가 떠올라서 반가웠다.


[책]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리뷰


정주행 마치고 보내 준 톡 내용이다. 션은 발랄한 '아소카'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뜬금없이 아소카 그림을 보내면서 자기 여자친구라고 인사하라고 한다.


션 : 내 새 여친이야, 인사해 (+아소카 그림 첨부)

깡지 : 아스카가 너보다 30살은 연상일걸? 엄마뻘임, 내 친구다.  

(내가 에반게리온 봤을 때 이미 아소카는 성인이었으므로)

션 : 아스카 01년생임 ㅋㅋㅋ 누나다 누나, 공식 설정이 01년생이야

깡지 : 뭔 소리래? 1901년이지?

션 : 2001

깡지 : 뉴 버전 나오면서 신분 세탁했네

션 : 배경이 2016년이자너, 아니, 진짜 2001년생이라고 ㅋㅋㅋ

깡지 : 여자 성형 빨 사진발 속지 말라고, 30년 전에 이미 나랑 인사했어

션 : ㅋㄱㅋㄱㅋㄱ 나중에 에반게리온 같이 보자! 진짜 내 커먼 앱 같은 애니네, 이것보다 몇천 배 더 고뇌하고 만들었겠지? 진짜 명작이네, 앞으로 한 100년쯤 지나서 애니 기술이 발전해도 얘는 이미 그 위상이 레미제라블급 아니야?

깡지 : 이미 명작이고 전설이야. 그런데 모든 사람이 만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애니계의 명작'이지.

션 : 그러게 아쉽구려..


이후 다시 에니에 대한 이야기 이어지다가 아키라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가 초등학생 때 <아키라>를 만화책으로 접했는데, 그리 어렸을 때도 아키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충격이었다. 염세적 세계관, 암울한 미래, 주요 캐릭터들의 충격적인 결말,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역동적인 구도'와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였다.

그 어린 시절 단 한 번 본 만화였으나 워낙 강한 인상을 받아서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션이 중학생 때 코엑스 만화방에 데려간 적이 있다.

(메가박스 옆 계단 아래에 조그만 공간에 만화책들과 테이블을 뒀었는데,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다. 왜 없앴냐고!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코엑스 숨은 공간이었는데)

그때  션에게아카라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들 문제집 슬그머니 들이밀면서 풀어보라고 할 때인데, 나는 만화책 슬그머니 들이미는구나 해서...  내용이 밝고 희망찬 미래를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만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주는 이 작품을 본 션의 반응도 궁금했다.  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 나무위키 - 아키라


다시 전화로 션과 에반게리온과 아키라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국제전화와서 만화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모자가 어디있담. 그래도 나도 재미있었다. 누구랑 만화 이야기 해, 이 나이에.


통화 후  블로그 찾아봤다. 역시나 '있다!' 션 중학교 때 메가박스 만화방 가서 '아키라'를 보라고 했던 바로 그 이야기가! 한복 입고 경복궁 갔다가 다시 메가박스로 이동해서 영화도 보고 만화도 봤던 날이다.

(북촌한옥마을 - 경복궁 - 메가박스) 코스였는데 북촌 한옥마을 편에서는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적혀 있어서 웃음이 나왔고, 경복궁 편에서는 아키라 이야기도 있다.

진짜 내 블로그는 우리 가족 타임캡슐도 아니고 별의별 이야기 다 적어뒀다. 오랜만에 션의 중학생 때 말랑말랑한 모습 보니 왜 이렇게 귀엽냐.



ps.


이젠 션파도 이전에 있었던 가물가물한 이야기가 있으면 블로그 찾아본다.

나더러 맨날 '블로그질'을 한다면서 평가절하하는 표현을 쓰길래 '어허! 블로그질이라니, 블로깅!! 난 블로거! '라고 말했는데 이젠 블로그의 가치를 인정한다. 세상에 '나도 한번 해 볼까?' 이런 말을 다 하다니.

블로그의 가치를 정확히 말하면 '기록의 힘'이다. 그 시점에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여서 훗날 보면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그 당시로 점프해서, 그때의 기분까지 되살아난다.

그래서 처음에는 간단히 썼으나 점점 디테일한 묘사를 하게 된다. '지금 생각과 기분'이 날아갈까 봐.



아키라 덕분에 2016년 10월로 타임머신타고 다녀온 기분이다.

2016년도면, 7년 전인가?

경복궁 - 메가박스 만화방 (클릭)


션에게 보내줬더니 하는 말 좀 보게나...



그래도 요즘 세상은 워낙 통신기술이 발달해서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 하기도, 얼굴보기도 편하고 좋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서 너무 감사하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10633082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