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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Sep 17. 2023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 그리고 자기 객관화

대학생 아들과 대화

/ 션과의 통화 시리즈 /


션이 많이 바쁜지 한 며칠 톡으로 소식 주고받다가 오래간만에 통화를 했다.

근황은 항상 비슷한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활동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신기한 한국인으로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단다.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도 어느 정도 있다 보니 더욱 그럴 수 있다.

션의 호기심, 적극성, 사교성과 같은 기질은 션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그리고 스탠포드에서는 더욱 빛을 발하리라 봤다.

아니나 다를까 션 기질과 학교의 분위기는 싱크로율 100 퍼센트 가까이 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기는 고등학생 때까지 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막연히 그려지는 스탠포드 이미지와 션이 참 잘 맞는다고 말했다.


션 키울 때, 션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자식에 대한 객관화'를 꽤나 했다. 누가 션에 대해 칭찬을 하면 감사하기는 했지만 그 말이 독이 되지 않도록 션의 위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히 보려 했다.

가만 돌이켜 보면 션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대회에서 굵직한 상을 타오면서 쌓이는 상장만큼이나 션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으나, 거기 맞춰서 쓸데없는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객관화' 훈련을 꾸준히 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션의 성취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말자'였는데, 아마도 션과 나(엄마)를 분리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했을 때 부모로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너무 아이의 감정에 대입해서 보면 점점 나와 아이를 동일 시 하게 된다. 특히 엄마들은 누구나 이 증상을 겪게 된다. 그 결과 대표적인 부작용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부모가 더 실망하고, 점차 과정을 즐기기 보다 결과에 목표를 두게 된다.


션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도움을 준 의외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일'이다. 출근해야 하므로 물리적으로 션과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 보니 육아를 할 때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할 순간이 항상 함께 했다. 그 덕분에 션과 나의 정신적인 분리도 비교적 빠르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내 인생에서 션에서 나로 서서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고, 션의 독립성이 일찌감치 자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해서다. 션의 중고등학생 때 성적이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엄마가 된 배경이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션의 어떤 행동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사랑 표현은 더욱 후한 편이다. 그렇지만 션이 자만심에 빠지지는 않는지 늘 지켜봤다. 가끔 자신의 위치를 살펴봐야 한다는 식의 말도 해 줬다.

이런 시각은 션에게도 전달되어서 션 역시 꽤나 훈련이 된 편이다. 한껏 자신감, 자부심이 있다가도 자기 수준과 위치 대해 비교적 냉정하게 보고 있다.

자신감과 자부심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동력, 에너지'로 쓰이고, 자기 수준과 위치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구체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아는 것만큼, 경험한 것만큼, 자기 객관화를 계속 보정해 가고 있다.


스탠포드 다니는 대부분 학생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온 경우라서 개방형 교육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우수한 학생은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이다. 반면  션은 제주도 섬나라에만 있어서 상당히 폐쇄적인 공간에만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우수한 아이들과 장기간 비교할 기회가 없었다.  

드넓은 세상으로 가다 보니 처음에는 션도  기대 반, 걱정 반했을 텐데, 몇 개월 지나고 나니, 스스로 어느 정도인지 포지셔닝을 하게 되었다. 스탠포드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생각보다 꽤 잘 하는 수준이었다며, 자신감을 더욱 가지게 된 것 같고, 계속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내가 봐도 잘하고 있다. 나는 대학생 때 션처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올라간 만큼이나 사고 수준도 많이 올라간 듯하다.





션이 미국시간으로 새벽에 또 전화를 했다. 잠 안 자고 뭐 하냐고 하니 이번에는 리서치가 너무 재미있어서 며칠 잠 안 자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 와중에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잘 하고 있다고 하길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션이 어떤 박사과정 중인 어떤 형 이야기를 해 줬다.

그 형은 박사 진학할 게 아니라면 스탠포드에서 GPA 3.8 이상 정도면 취업, 석사 할 때 충분하다며, 자신은 4.0기준에서 4.3으로 졸업을 했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도서관에 내내 살지 말고 GPA는 3.8 정도로 유지하고 남은 시간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션이 이 말을 듣고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대학은 사회생활하기 전 마지막 '사회화 훈련 기관'인 거 같아.

이 시간을 도서관에서만 보내서 학점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고 하기 보다 많은 사람 만나고 다양한 경험, 체험을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누가 그러더라고, 대학에서 배우는 건 도서관에서 6개월간 빡세게 하면 다 배울 수 있다고.


그러고 보니까 대학교는 초등학교와 똑같더라.

초등학교가 인생 최초로 집단생활하면서 '사회화 훈련'을 시작하는 데 잖아. 초등학교에서 지식 면에서는  배우는 건 거의 없지만 단체생활에서 앞으로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처음 배우는 곳인 거잖아.

대학교도 마찬가지 같아. 최대한 다양한 사람 만나고, 하고 싶은 것도 해봐야 사회 나갔을 때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거 같아.


깡지

그래, 사실 대학교의 최대 강점이 그런 거지. 사회에 나오면 호기심과 재미로 그렇게 뭔가 하고자 하는 사람들 만나기 어려워. 대학교에서는 비슷한 관심사 가진 사람 만나기 쉬운데, 사회 나오면 다 섞이거든. 특히 그 동네는 새로운 것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곳 일거 아냐. 주변에 멋진 사람들 많을 테니 많이 만나봐. 그게 진짜 배우는 거지.

사실 '자극'만큼 배우는데 필요한 건 없는 거 같아. 좋은 자극 받으면 내적 동기 생기거든.


넌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 중 뭐 택할래?


당연히 용의 꼬리지


깡지

엄마도 그래.

'뱀 무리'가 아니라 '용 무리'로 가야 일단 '용'으로 살 수가 있어. 그렇게 살다 보면 처음에는 꼬리이더라도 머리가 될 기회를 만날 수 있거든. 그래서 무언가를 배우는 시기에는  내가 어디에 있느냐, 누구와 함께 있느냐 하는 환경이 진짜 중요해.

어떤 그룹의 구성원들 대다수가 진취적이면, 다들 새로 시도하는 걸 별로 겁을 안내니까 나도 뭔가 새로 시작하기 편해.

그렇지 않은 구성원원 속에 있으면,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격려를 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걸 하려고 그래?","해도 소용없어", "다 해봤어, 헛수고야" 이런 말만 하거든.

나만 중심 잡고 결심하면 잘하면 될 거 같지만, 주변이 이런 분위기면 의지도 꺾여.


그리고 이번에 배웠겠지만, 멀리서 보면 대단해 보이는 무리도 막상 가보면 그렇지 않아. 그 Pool에 들어가면 나 역시 얼마든지 잘 해 낼 수 있거든. 그런데 대부분 지레 겁먹어서 기회가 와도 잡지를 않아.  


엄마도 처음 IBM 입사했을 때 걱정을 했었어. 그때는 많이 좋은 회사여서 입사가 어려웠거든.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하고 입사를 했지. 그런데 막상 같이 생활해 보니 해볼 만하더라고.

엄마도 점점 발전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디건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걸 배운 것 같아.  그 기억이 자꾸 나서 그동안 "괜찮다고, 할 수 있어"라고 말해 줬던 거야.


네 말처럼 사람들 계속 많이 만나. 가급적 다양하게.




어떤 그룹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면 주변의 칭찬과 기대에 힘입어 우쭐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자기 객관화를 하지 않으면 뱀의 꼬리로 살게 된다. 뱀의 무리에서 자기 객관화는 미지의 누군가를 상상하며 등장할 때가 많다. 그래서 '여기에서 잘한다고 자만하지 말자. 세상은 넓다.'로 생각하고 비교 대상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원하는 그룹, 즉 용의 무리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러다가 몇 번 작은 도전을 해 보면 '어?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구나'하며 어느 정도 근거 있는 포지셔닝을 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잡아나갈 수 있다. 물론 그 자리에 만족하고 안주할 수도 있다.


션이 계속 뭘 열심히 하고 있는 거 같아서, 나도 마음에만 담아둔 거 행동으로 옮긴 걸 톡으로 보내줬다. 션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서 한 거지만, 그저 말로 '응원한다, 잘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엄마가  뭔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션에게 격려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나는 마라톤 대회 (10km) 신청한 것,

또 하나는 그림 그리기 시작한 것,

마지막 하나는 아직은 비밀.

(설레발 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


션에게 소식 전해줬더니 이게 뭐라고 "역시 멋있어"라고 톡을 보낸다.

다른 것보다 몸치, 운동치 엄마가 뒤늦게 운동을 하더니 10km밖에 되지 않지만 마라톤 대회 나간다고 하니 멋있다는 표현을 쓴 것 같다. 나도 이리 격려 받으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하나 시작하면 꾸준히 하고, 또 새로운 걸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션도 은연중에 "엄마 닮아서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종의 후생 유전학 같기도 하네?)  

나중에 만나면 새롭게 장착한 아이템으로 우리 가족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보게 될 것 같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304596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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