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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Mar 30. 2022

아들의 여자 친구

직장맘의 육아일기


15년 전 K은행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K은행과는 4번의 프로젝트를 했다. S통신도 20여 년 전 시작해서 3번가량 했으니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지금은 나 역시 적지 않은 나이인데, 다 함께 늙어가다 보니, 아직도 막내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K은행은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다. 그 세월 동안 자제분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취업을 했다. 가끔 식사를 하다 보면 이렇게 큰 아이들 이야기하는데 제법 재미가 있다. 반대로 내 아들, 션이 고3인 것에도 다들 놀라신다. 언제 그렇게 세월이 흘렀냐며.


그런데 많은 분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나와 꽤나 차이가 있다. 남자들 비중이 높으니 '아빠 마음'이겠지만, 엄마라고 다를 게 없다.

대표적으로, '우리 아이는 이런 행동 안 할 거야'라는 믿음도 제법 강하고, 이성교제에 대해서는 꺼리는 분위기다.

반면 나는, 내 아이만 반듯한 행동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기심 때문이건, 친구 따라 강남을 가건, 잠시 정신이 가출을 했건,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성교제 관해서는 원하면 하라는 주의다.


션파와 이야기 나눌 때, 내가 솔직하게 한 말에 대 션파의 반응이 나의 기대와 달랐던 적이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 그렇겠지만, 션파가 어떤 마음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머리'로는 이해가 가나 '가슴'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일이 많아 피곤이 누적된 상태에서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하면, 잔소리를 가장한 걱정을 한다. 혹여 내가 몸이 안 좋으면 '그리 무리해서 일하더니 병났구나'라고 말해주면 될 것을, '그러게 왜 운동까지 한다고 그래'라고 말할 때는 야속해진다. 이전에야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차분하게 '경고(?)' 한다. 대게는 다 소소한 일들이고, 션파도 바로바로 고쳐서 별 갈등이 없다.


나는 누가 나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 중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남에게 절대 하지 않는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어하겠지 싶어서다. 일이 많더라도 잠시 짬을 내서 운동을 할 때, 션파에게 '응원'을 받고 싶었지, 쉬지 않는다'한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션에게도 적용되었다. 션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이를 빌미로 꼬투리 잡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션은 고3까지도 가급적 매일 운동을 한다. 하루 1시간 운동이지만 내일이 시험이고 공부를 다 못했는데도, 꾸역꾸역 운동하러 가는 걸 보면 목구멍까지 '아니, 내일 시험 끝나고 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션파가 나를 바라볼 때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표정관리도 잘 안될 때가 많다. 보살이 되어야 할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물며 여자 친구 사귄다면 오만가지 걱정이 다 들 것이다. 어제 함께 식사하신 분은 자제분이 취업 준비 중인데 거기다 연상을 사귄다고 걱정을 하셨다. 취업을 하고 만났으면 하셨고 연상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다분히 우리 나이의 부모가 가지는 보편적 심리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취업을 하고 만났으면'을 달리 이야기하면, '대학을 입학하고 만났으면'이라는 말도 된다. 어쩌면 취업을 하고 나서는 이미 나이가 제법 들었을 테니 '아무나 만나지 말아라'라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이성친구 만나나 싶기도 하다. 나는 션이 연상 만나도 정말 아무렇지 않다. 내가 사귀는 게 아니다. 자기가 좋으면 그만이지.

션은 결혼 안 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 역시 그러고 싶으며 그러라고 했다.


션은 여자 친구 여러 번 사귀었다. 짧게 만난 친구도 있고 비교적 오래 사귄 친구도 있다.

션이 중학생일 때 어느 네이버 카페에 여자 친구 생겼다고 쿨하게 올렸더니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아들이 누굴 만난다면 눈물이 날 것 같다부터 시작해서, 대게는 내 아들의 이성교제를 못 견딜 것 같다는 글들이다.


오래전부터, 션이 여자 친구를 사귀면 절대 반대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해 왔다. 누구를 만나는 건 본인 자유 같기도 하고, 이를 반대하면 오히려 엄마에게 마음을 숨길 것 같아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친구가 생기거나, 누군가를 사귀는 일이 생기면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엄마에게 여자 친구 생겼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고 하면 더 말하고 싶겠는가. 숨어서 사귀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서 잘 들어준 것이다. 여자 친구 선물도 함께 고르기도 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편하게 여자 친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도 해 주고 심지어 상담도 한다.


친구들은 모두 이성교제를 할 때 부모의 반대 또는 감시 통제에 들어가는데, 난 아무렇지 않게 대해 주고 이야기 잘 들어주니 오히려 '우리 엄마 최고'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와 더 관계가 좋아졌다. 뭐랄까 '우리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이구나'라는 느낌을 준 듯하다.


션은 지금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제법 오래되었다. 참 괜찮은 친구였는데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한 걸로 알고 있으나 헤어진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다 보니 침울해하더니 이젠 동성 친구와 만나고 연락하는 비중이 확 늘어서 션 스스로가 엄청 만족해한다. 아무래도 이성친구를 사귀면 학업에 방해되는 게 아니라 동성친구와 소원해졌나  보다. 


아이들 마다 다 다르고, 집안 분위기도 다 다르다. 우리 집은 아이에게 자율권을 상당히 많이 주는 편이다.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고, 이게 맞나 싶기도 했는데 다행히 별 일 없이 잘 지나갔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까운 시간 버린 적도 있고, 시행착오도 한 적이 있을 텐데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인생을 간접경험으로만 할 수는 없다.


어제 식사를 하다가 나온 여자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생각을 한번 끄적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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