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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어 드릴까요?

길 위의 오지랖

by 연작가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말이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사진 찍어 드릴까요?"라며 낯선 분들께 말을 건넨다. 이 무슨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 길을 걷다가 예뻐 보이는 장면이나 누군가의 따뜻한 순간이 눈에 들어오면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넨다. 그 대상은 주로 노인들이다.


몇 해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긴 복도를 따라 이어진 통유리 너머로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비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던 노부부의 뒷모습이 너무도 예뻐 보여 다가가 사진을 찍어 드려도 될지 여쭈었다. 핸드폰을 얼떨결에 건네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허락을 받은 후 비 내리는 통유리 앞에서 뒷모습을 담아 드렸다. 인사를 드리고 멀어지는데, 뒤에서 "뒷모습 찍을 생각은 못 했는데, 예술가네, 예술가야"라는 말씀이 들렸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일 경우, 나의 오지랖 정도는 더 심해진다. 휴가를 내어 제주 올레길을 세 번이나 완주하다 보니 1,000km 넘는 길을 홀로 걸었다. 이때도 나는 이 버릇을 멈추지 못했다.


첫 번째 올레길을 돌 때는 혼자 걷는 올레족이 월등히 많았다면, 두 번째 올레길은 유독 부부 비중이 높았다. 느낌상 80% 이상은 은퇴한 중장년 부부였다. 주로 남편이 아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두 분이 함께 셀카를 찍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다가가서 "사진 찍어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대부분 기쁘게 핸드폰을 건네주시지만, 문제는 대부분 경직된 포즈였다.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복사꽃이 유명하고~~"를 외치는 이장님의 연설 포즈같이 거의 차렷 자세로 두 분이 어색하게 서신다. 낯선 사람 앞에서, 그것도 갑작스러운 사진 촬영에 익숙할 리 없으니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간단한 포즈를 제안한다. "만세 해보세요! 이렇게 하트 만들어 보세요~ 자, 다음에는 어깨동무! 이번에는 서로 바라보세요!"

이장님 자세 같던 포즈는 금세 함박웃음으로 바뀌고, 두 분 모두 활짝 웃으시며 포즈를 잡아주시는데 무척 즐거워 보이신다. 대부분 아내분이 좋아하시며 남편에게 이렇게 하라며 자세를 잡아주기도 하고, 남편분도 근엄한 표정에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그러는 동안, '하나, 둘, 셋' 이런 거 없이 연사로 수십 장을 찍고, 핸드폰을 돌려 드린다.


그러면 상대에서도 "사진 찍어 드릴게요"라고 되묻곤 하신다. 다른 사람이 찍어줘야만 하는 장소, 예컨대 오름 정상, 절벽 앞, 드넓은 배경 등이 아닌 이상, 그냥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며 자리를 뜬다. 아무래도 나는 셀카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고, 이미 카메라 너머로 전해지는 그들의 표정과 풍경이 내 마음 속에 세겨져서다.


기억에 남는 분들은 더 있다. 등산을 갔을 때 할아버지 네 분을 만났던 때다. 사진을 찍어 드리며 이분들에게 "자, 이번에는 오른손 주먹 불끈해서 아자! 해보세요, 손가락 브이~" 등을 주문하며 찍어드렸더니 너무 즐거워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셔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또 다른 장면 중 하나는 지리산 노고단에서였다. 그곳에 어떤 할아버지가 어머니로 추정되는 연세가 훨씬 많은 할머니와 함께 오셨다. 할머니는 연로하셔서 아마 더 높은 곳은 올라가지 못할 듯해 보였고, 할아버지가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할머니를 모시고 온 것처럼 보였다.

곰 동상 앞에 두 분이 앉으셔서 셀카를 찍으시는데, 저 각도면 화면에 두 분 얼굴만 꽉 찰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방에서 찍는 사진이나 다를 바 없는 사진이 될 게 뻔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 드려도 될지를 여쭈어 보았다. 그렇게 몇 컷 찍어 드렸더니, 황송하게도 할아버지가 크게 고개를 숙이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사진을 찍어 드릴 때면 늘 '어떤 분들일까?', '어떤 관계일까?'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온 것일 수도 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좋은 곳을 보여드리고 싶어 들른 곳일 수도 있다. 훗날 할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리울 때, 이 사진을 보며 "그때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지" 하며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마음은 해외여행 중에도 다르지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말한다. 혼자 여행 다니는 이유가 있을 테고, 본인 사진은 안 남겨도 상관없을 수 있다. 그래도 훗날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발견했을 때, 여행의 추억을 살릴 수 있었으면 싶었다. 낯선 이의 친절이 여행의 일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미술관에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셀카를 찍고 있을 때도, 가까이 가서 "제가 찍어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어릴 때 아이 사진이 느는 만큼, 엄마 자신의 사진은 사라진다. 나도 그랬다. 내 삼십 대 사진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의 소중한 시간을 사진에 담아 주고 싶었다.


처음엔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은 순수한 호의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 짧은 나눔에서 내가 받는 충만함이 생각보다 컸다.

낯선 이의 카메라 속 미소를 바라볼 때, 나의 마음은 더 환하게 물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말을 계속 하게 될 것이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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