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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달리는 사람들

큐레이터의 기록 - ‘달리는 사람들의 철학’ 두 권

by 연작가

북큐레이터가 Pick한 책: (제목을 클릭하면 개별 책 리뷰로 연결됩니다)

1.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 베른트 하인리히, 『뛰는 사람』


함께 읽기 좋은 책: 크리스 네이피어, 『달리기의 과학』, 김성우 『30일 5분 달리기』, 오세진 『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묘비에 남기고 싶다는 마지막 문구다. 이보다 달리기의 본질을 간결하게 담아낸 말이 또 있을까.


나는 거의 쉰을 바라보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산책 중, 나보다 훨씬 연상으로 보이는 분들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보았고, 문득 “나도 한 번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첫날, 1분도 채 달리지 못했지만, 매일 꾸준히 시도한 끝에 몇 달 뒤엔 10km를 거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힘들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리는 동안 머리가 텅 비고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다. 온종일 쌓인 정신적 피로와 마음의 부담이 달리기를 통해 씻겨 나가는 듯했다. 이후 나는 자주 달리러 나갔다. 마음이 복잡할 때, 생각이 꼬일 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운동화를 신었다. 나에게 달리기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마음을 돌보는 도구였다.


이번에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은 달리기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준다.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작가와 학자가 말하는 ‘달리기’는 닮은 점이 많다.





첫 번째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 경력만으로도 ‘달리는 작가’라 불릴 만하다. 이 책은 사생활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하루키가, 자신의 원동력인 달리기에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다.


하루키는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소설을 착실히 쓰기 위해 신체 능력을 가다듬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를 ‘불건전한 직업’이라 표현한 그는, 체내 독소에 대항할 자가면역 체계를 갖춰야 더 깊고 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건강한 몸이 필요했고, 운동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는 소설 쓰기와 마라톤 연습이 겉보기엔 달라도 본질은 같다고 말한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자질은 ‘재능’, ‘집중력’, ‘지속력’인데, 마라톤에도 이 세 가지가 똑같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나는 이 세 가지가 어떤 일이든 기본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다 보면 나 역시도 달리기와 내 일이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하루키는 체중이 쉽게 불어나는 체질이라 오히려 운동과 식단 조절을 통해 절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종종 ‘의지가 강하다’는 평을 듣지만, 20년 넘게 달려온 이유는 달리기가 자신의 성격과 잘 맞아서이지, 강한 의지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긴 거리를 달리려는 사람은 언젠가 저절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라며, 굳이 달리기를 권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인다.

이 책은 마라톤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고백이기에 더 큰 공감을 준다.





두 번째 책: 『뛰는 사람』


이 책의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 교수는 ‘우리 시대의 소로’로 불리는 생물학자이자 울트라마라토너다. 최재천 교수님이 존경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뛰는 사람』은 단순한 달리기 예찬서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80대까지의 삶을 아우르는 자서전이자, 그의 인생 연구 보고서다. 달리기에 대한 그의 전 생애를 걸친 일지, 생물학자로서의 주요 발자취, 세계 곳곳에서 실험한 생체시계 매커니즘과 노화의 상관관계, 숲의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읽힌다.


■ 첫 번째 흐름: 마라토너로서의 여정

하인리히 교수는 80세에도 100km 달리기를 목표로 삼았지만, 부상으로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80대에도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는 세간의 건강·노화에 대한 통념을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검증했다.


예컨대, 운동선수는 폐가 크다는 통설과 달리, 그는 자신의 폐가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히려 작은 폐가 효율적일 수 있으며, 비효율성을 보완하기 위해 폐가 커지는 것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또한 격한 운동이 생체시계를 앞당겨 노화를 촉진하고 일찍 죽게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 직접 몸으로 검증하고자 했다.


그가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오래 살고 싶다면, 굶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식품 산업이 이와 반대되는 논리를 논문과 의사의 입을 빌려 사회 전반에 잘못된 상식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두 번째 흐름: 생물학자로서의 삶

어느 날 친구가 하인리히에게 물었다. “자네에겐 자연이 더 중요한가, 달리기가 더 중요한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대부분의 과학이 현재를 대상으로 실험한다면, 생물학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숲으로 나가야 한다. 그는 실험실보다 숲을 선택한 생물학자였다.

생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 대학 진학 이야기, 곤충생리학자 강사 시절의 에피소드, 연구를 가로채였던 경험 등 학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과 생명, 그리고 달리기에 대한 사랑을 담담히 기록할 뿐이다.


세 번째 흐름: 생물들과의 만남

하인리히가 달리는 길 위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등장한다. 숲과 들판, 산과 강을 달리며 만난 생물들은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는 달리며 관찰하고, 연구하고, 기록했다.

그는 마흔부터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같은 질문을 들어왔다. “자네, 아직도 뛰고 있나?” 나이 들면 달리기가 불가능해진다고 하지만, 그습관과 경험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많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그 믿음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실제로 중년에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고, 팔순이 넘은 지금도 수십 킬로미터씩 달린다.


그에게 연구와 달리기는 같은 일이었다. 자연을 탐구하고, 자신을 실험하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일. 그 모든 것을 평생 한결같이 실천해온 사람. 『뛰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쓴 책이다.





달리기가 궁금할 때 함께 읽기 좋은 책들

『달리기의 과학』 (크리스 네이피어): 달리기에 대한 과학적 기반과 훈련 방법을 정리한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수많은 주장 중에서도 과학적 근거를 갖춘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30일 5분 달리기』 (김성우): 달리기를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기본기를 다지는 데 유익하다.

『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오세진): 교통사고 후 재활의 일환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다.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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