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비법

워킹맘의 육아일기

by 연작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사람마다 방식이 다 다르다.

계획부터 세우고 준비를 철저히 하고 필요한 장비도 모두 구비한 후 시작하는 사람,

일단 시작부터 하고 부딪쳐 보는 사람,

부담되지 않는 범위에서 가볍게 시작하는 사람 등


나는 만약 뭔가 맨바닥에서 새로 A를 시작하는 경우에

(1) 일단 시작부터 하고 (2) A를 1순위로 둬서 시간을 최대한 투자한다.

한 달 정도는 A에 집중하고, 나머지 일들은 잠시 걷어낸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도 처음 한 달은 업무 외에 운동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남는 시간이 워낙 한정적이라 운동부터 했다. 운동을 많이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루 1시간이지만 안 하던 운동을 하니 몸이 더 힘들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되고 운동습관도 생겨서 운동 비중을 줄이고 그동안 중단했던 것들을 다시 껴 넣었다.

한때 영어를 열심히 할 때, 요리를 하는 동안, 독서를 하고 리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은 적응될 때까지 오로지 한 가지만 했다.


이런 스타일은 업무를 할 때 가장 두드러진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처음 석 달은 다른 개인적인 일은 모두 차치하고 프로젝트에 올인한다.

IT의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서 익힐 것들이 상당히 많다. IT 기술요소뿐 아니라 해당 site의 비즈니스 특성과 요건까지 빨리 파악해야 한다. 아무래도 컨설팅을 해야 하니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공부를 해야 고객들과 수행 사들을 상대할 때 포지션을 잡기가 편해진다. '프로젝트 초반'에 시간을 집중 투자해서 몰입을 하고 나면 나머지 프로젝트 기간 동안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경험을 잘 엮으면 꽤 괜찮은 컨설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두세 달가량을 밀도 있게 일하는 동안은 책이고, 운동이고 간에 거의 미룬다.


새로 시작하는 것들은 에너지를 꽤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사실 다른 것을 할 심적, 체력적 여유가 없다. 만약 여러 개를 동시에 할 경우 체력도 못 배기지만, 그만큼 속도가 더디거나 퀄리티가 떨어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많은 에너지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보다 훨씬 쉬워진다. 여러 개를 동시에 해도 '충분히' 다 해 낼 수 있다.

이 방법의 또 하나 장점은 다른 유혹(예를 들어 가벼운 모임, 시간 때우기용 TV 보기 등)을 이겨내기 쉽게 해 준다.


그간 경험으로 볼 때 뇌근육이건, 혀근육이건, 몸의 근육이건 처음 시작을 할 때는 딱 한 가지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모두 stop 또는 최소한으로 해서 빠르게 적정 수준의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도 주었다.

뭐든 처음 시작할 때는 힘이 들고 어려우나,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면 슬슬 '재미'가 붙는다. 삼주가 지나가면 이제부터는 하지 않으면 왠지 찜찜해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션에게도 잘 통했다.

션도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지, 좋아하면 한동안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릴 때 관심사에 대해 꽤나 깊이 있게 내려갔다. 그런데 스스로 좋아서 찾아다니는 것 말고, '학습'에 대해서도 이 방법이 통할까 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예를 들어 수학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다른 건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매일 수학을 일정분량 하도록 하고 남은 시간은 뭘 하든 내버려 뒀다. 최소한으로 한 것이 학교 숙제였던 것 같다. 션의 부담이 없어야 지속성을 가질 수 있으므로 션의 수학 진도에 맞춰서 강약조절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더라도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부터는 재미있어한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지나서 수학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집중 시간을 멈추고 적당히 진도를 나가면서 나머지 것들을 병행할 수 있게 했다.


디베이트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은 디베이트와 관련된 것만 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반드시 모두 힘을 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디베이트 근력과 흥미가 붙으면서 집중 시간은 다시 멈추고 적당한 진도를 나갈 수 있게 했다.

쉽게 말하면 한 가지를 새로 시작하거나 잘하고 싶을 경우 특정기간 동안 퐁당 빠질 수 있게 나머지는 모조리 다 가볍게 하거나 중단했다. 어릴수록 자신감과 재미가 없으면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궤도에 오르고 나면 다시 챙겨야 할 것들을 균형 있게 배치했다.


션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션 스스로 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션 스스로가 잘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다른 건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한 가지만 그리 집중했다. 중학생부터는 이렇게 한 가지만 집중하는 것이 어쩌면 위험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오히려 내가 방법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결국은 시간싸움이라 션은 저절로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하게 되었다.

션을 지켜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션은 고3까지 저런 행보를 거듭했는데 결론적으로 꽤 효과가 좋았다. 아무래도 집중을 하니까 성과도 빨리 나온다. 그리고 자신 있는 과목이나 영역이 하나씩 늘었다.


션이나 나의 경험을 보면, 어떤 것은 가늘고 길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초반에 짧고 굵은 단계를 거치고 나면 '가늘고 길게 하는 것' 즉, '지속성'을 가지기에 더 좋았다. 이미 재미와 습관 두 가지를 다 챙겨서이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는 미처 재미를 느끼기 전 다른 우선순위에 의해 밀려난 경우가 많다. 처음 시작하니 익숙해지기 어려운데 자꾸 다른 일들까지 챙겨야 하니 실력도 빨리 늘지 않는다.


엄청 피곤한 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면 내가 어디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을 '루틴'으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최근 피곤한 날, 샤워하고 폭신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커피나 차 준비해서 책 읽는 것이 엄청 행복하다. 운동은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4일을 넘기면 '찜찜'해진다. 귀찮긴 해도 몸을 움직이고 나면 괜히 뿌듯해지는데 의무감이 아니라 재미로 느껴진다. 그래서 최소한 일주일 이틀 정도 몸을 움직이고 있다.


션은 요즘 코딩의 재미에 빠져 있다고 한다.

아마 어느 정도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실력이 쌓일 때까지 한동안 코딩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다. 초반이라 그런지 그리 악착같이 하던 운동도 잠시 쉬고 있다고 한다. 다음 학기에는 학점신청도 꽤 많이 했다고 하며 "다 해 낼 수 있겠지?"라고 물어본다. 나에게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보인다.

아마도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양을 채우고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다시 하면서 밸런스를 유지할 것 같다.


과거에 풍덩 빠져본 경험이 없다면, 어렵고 지겹더라도 3주 정도만 '매일' 해 보면 그 사이에 최소 한 번은 재미와 성취를 느낄 때가 오니 시도해 보면 좋겠다. 그 단계만 넘어가면 그 후는 저절로 굴러간다. 특정 기간 한 가지를 우선으로 두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부모가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보면 좋은 점도 있다. 새롭게 배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알 수 있어서 아이에게 뭔가 배우게 할 때 아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면서 "나 때는 잘했는데 왜 저걸 이해를 못 해." "아니 학원까지 보내줬는데 성적이 왜 안 나오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부모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분명히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지 말고, 내가 한 번도 안 해 본 것, 골프도 좋고 독서도 좋고 그림도 좋으니, 새로운 도전을 해 볼 때 느낌과 기분을 잘 기억해서 아이를 바라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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