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에야 동종 업계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간간히 친구들 보는 정도이니 이런 질문 자체가 등장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들 중에 물어보는 경우가 있긴 해도 이때는 "응, OOO에 다녀" 이 정도로 대답하면 끝났다.
직업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전업주부들이었고, 대부분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남편들이 시시콜콜 다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남편의 업무가 어떤 지, 일터 분위기는 어떤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들 중 일부는 직장생활을 몇 년 하다가 관두고 전업의 길로 들어선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오래 일하지 않은 경우 본격적인 일터에서의 치열함은 제대로 느끼지 못해 본 경우가 많다.
오래전, 어떤 분이 남편 운동 좀 하라고 헬스장 회사 근처 끊어 줬는데 바쁘다고 거의 가지를 않는다며 하소연을 하셨다. 야근을 하면 저녁 운동잠시 하고 야근해도 되고, 제시간에 마치면 마치고 운동하고 오면 되는데 조금만 시간 내서 하지 안 한다고 하셨다.
조용히 이야기 듣고 있다가, 회사에서의 업무/사람과의 관계에 따른 스트레스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해 드렸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고.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개인의 자유보다 역할에 맞게 생활해야 하고 부딪치는 경우도 많다. 저녁의 회식이나 모임도 의무감에 갈 때도 있으며, 거기서도 여전히 사회인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이 와중에 '운동'이 껴들어가려면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남편이 집안일, 아이들 교육을 안도와 준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이를 대변을 해 드린 적도 있다.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충전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는, 일터에서 에너지를 다 고갈하고 와도 이를 채우는 방법이 누워서 쉬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취미생활, 션과 놀아주기 등이어서 괜찮았으나 이런 경우는 희귀하다.
남자들 중에서도 그리 무리해서 일하면서 주말에 골프와 낚시를 죽자고 가는 분들 있다. 야근을 거듭하면서도 새벽에 골프, 낚시를 가는 걸 보고 체력이 버티나 했더니, 몇 해 지켜보니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을 얻는다. 어찌 보면 나와 비슷한 부류다.
그런데 많은 경우는 쉬어줘야 한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는 모습이 빈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채우는 중이다.
잠시 이야기가 벗어났는데, 아무래도 '엄마들'이 아이들 키우면서 향후 어떤 직종/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까를 아이들 당사자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많거나 적극적이신 분들은 특정 직업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게는 순수하게 내가 너무 바빠 보이고 모임에 등장하지 않으니 가끔 얼굴 들이밀면 왜 그렇게 바쁜지, 어떤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마다 설명이 난감했다. "OOO 다니고 있어요."로 끝나면 쉬운데 "거기서 어떤 일 해요?", "개발 잘하겠네요?", "나 아는 사람도 거기 다니는데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왜 바빠요?" 등으로 질문이 이어질 때가 있다.
"아니요, 개발자는 아니고 IT컨설팅을 해요."라고 하면 "IT컨설턴트가 뭐예요?"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설명을 좀 자세히 했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느껴져서,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분들께 소개할 일이 생기면 그냥 "회사 다녀요."로 끝냈다.
내가 설명을 해도 저분들이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설명이 빈약해서다.
그러고 보니 IT컨설턴트가 뭔지 나도 헷갈려했던 것 같다.
별 고민 없이 IBM을 입사했고, 이 회사가 컨설팅 회사다 보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곧 IT컨설턴트가 하는 일이었는데 정작 'IT컨설턴트'가 뭔지 정의조차 모르고 그렇게 주어진 일을 계속해 왔다.
IT컨설턴트의 정의가 모호한 이유는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서 일 것이다. 빵이나 옷, 건물은 눈에 보이는 '실체'이다. 그래서 제빵사, 디자이너, 건축사 라고 하면 설명하지 않아도 대략 감이 온다. 그런데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면 '시스템'이 뭔지부터 애매하다 보니 이를 만든다고 하는 집단인 IT업종도 잘 와닿지 않게 된다.
"개발"이라는 단어가 IT를 대변하곤 하나 개발이 다가 아니다. 옷을 만드는데 재봉사만 언급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끔 유튜브에서는 시중에 판매된 기계 제품을 잘 사용하고 활용하는 것도 IT 범주에 넣곤 하는데 이는 소비자/사용자 측면의 성격이 강해서 IT의 본질에서는 좀 많이 벗어나 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다시 정의해 보자.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틈, 클릭과 브릭, 정보 네트워크와 물류, 가상현실과 실제현실 등의 이분화된 표현을 우리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이 두 단어들 조합 중 전자가 '보이지 않는 세상, IT세상'이다. 이 세상도 확장된 단어들이 매번 등장하며 개념을 엎고 있으며 최근 가장 흔히 사용하는 말이 '메타버스'이다. 앞으로도 또 새로운 개념은 무궁무진하게 등장할 것이고 활용범위도 너무 넓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인 IT세상은 무한정 팽창할 것 같다.
내가 대학에서 배울 때와 지금 IT는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대학에서 배운 것은 비유하자면 사칙연산 정도이고 오히려 일터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익히고 응용하고를 반복해 왔다.
나정도 경력의 사람들은 '실전'에서 부딪혀 가며 배움을 함께 했다면, 최근 10년, 15년 이내 IT업계에 발을 들인 후배들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이론적 체계가 마련된 후기 때문에 대학, 책,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에서 이를 습득하고 일을 시작하고 있다.
IT업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큰 변화 속에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변함이 없을 수 있으나 IT업계가 계속 팽창해 왔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 주위로 태양이 돈다.'가 IT초기 일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IT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시절이었고 개념도 지금과 비교하면 많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시스템과 통신을 만들어 내는 정도였고 이조차 하드웨어 발달의 초기여서 한계가 많았다.
반면, 지금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그 속에서 지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오프라인 세상을 그대로 온라인에 거울세상을 재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둘을 융합하더니 이제는 오프라인의 일부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우주가 넓어지듯 IT세상도 계속 넓어지고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 속에서 일하는 IT인들의 역할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단순히 PM(Project manager), 아키텍처, 개발자 등의 구성으로는 커버하지 못하는 많은 역할들이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사는 세상이 넓어진 셈이다. 어떤 이는 그 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하고 맨 앞에서 계속 남들이 생각 못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부분은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 다른 새로운 것으로 이동할 때 어떤 이들은 빈자리를 지켜내는 것으로 차별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미래를 내다보며 조언과 자문을 하는 것이 IT컨설팅의 기본 성격이다 보니, 모호함에 모호함이 얹어져서 같은 업계가 아닌 이상 IT컨설턴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IT컨설턴트'란 크게 두 부류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IT세상을 새롭게 정의하고 넓혀나가는 사람', 그리고 '기업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 전반에 대한 자문을 해 주는 사람'전자는 실전에서 일한다기 보다 학문적인 영역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어서 사실 IT컨설턴트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게는 후자를 IT컨설턴트라고 하며 우리가 만나는 IT컨설턴트들에 해당한다. 이들이 새로운 IT개념, 미래동향을 빠르게 익혀서 기업들이 새로운 IT기술을 받아들이고 적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때 한 명의 IT컨설턴트가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므로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컨설팅을 한다. 그래서 IT컨설팅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팀'으로 움직인다.
어설프게 알아서는 컨설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필수고, 이를 적용해야 하므로 연관된 '경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문제해결력이 중요하다. IT컨설턴트의 소양에 대해서는 이전에 적은 적이 있다. 적성에 맞으면 성취감이 대단한 업종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의 시스템 구축에 대한 자문이라고 간단히 썼는데 여기도 여러 성격으로 나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창출이 기본 목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도구 중 하나가 '시스템'이다. 빠르게 변화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많은 기획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때 사람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각종 시스템의 힘을 빌어 총력을 다해 지원을 해 줘야 한다.
시스템 구축은 '사용자 측면'과 '인프라 측면'에 대한 고려를 해 주게 된다. 사용자 측면에서는 '업무 효율성'과 '사용자 요구에 대한 즉시성'이 필요하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안정성'과 '확장성'이 필요하다.
이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에 따라 IT컨설팅 내용은 달라지며 필요한 IT컨설턴트 기술력도 달라진다.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서 적용하는 것이 IT컨설팅이 아니라는 소리다.
나도 처음에는 '새로운 것, 선진 기술과 개념'을 적용하는 컨설팅을 주로 했다. 프로젝트를 하나 할 때마다 하나를 깊게 파 들어갔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깊게 파 들어간 구멍들을 연결해서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시스템 구축 전반에 대한 컨설팅으로 바뀌게 되었다.
프로젝트들이 워낙 복잡한 방식으로 바뀌다 보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의외로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 성장가능성과 차별성이 상당히 큰 영역이긴 한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멘털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소수 인력으로 팀을 구성해서 하고 있다.
IT컨설턴트가 왜 설명이 모호한지 나도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된다.
100년쯤 후 IT의 지도를 가지고 돌아와서 지금 우리가 여기쯤 위치하고 있다면 훨씬 설명이 쉬울 수 있겠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 확장 중인 세상 속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직종이다 보니 설명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글을 적으며 이제라도 자 자신에게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명쾌해지리라 여겨진다.
넓은 우주에서 지구는 변두리 행성이다. 하지만 우주의 일원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 역시 IT세상을 일구어 가는 일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IT세상을 넓혀 나가는데 조금의 기여는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