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배구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Mar 06. 2023

이렇게 못하는 사람의 글이 도움이 될까? (10/16)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분명히 다른 날보다도 더 주저하지 않고 수업을 들으러 갔고, 배구 수업을 들으면서도 재밌었고, 이번 메인 코치님은 아주 작은 틈이라도 찾아서 칭찬을 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좋았어요!'를 더 자주 들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늪으로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이렇게 몸을 못 쓰는 줄 몰랐고 배구 너무 어렵고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참 많이도 했고 친구들도 질릴만큼 들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아했을 것 같다. 진짜 저렇게까지 못하나? 아니면 엄살인가? 아니며 그냥 느는 데 시간이 좀 걸리나? 이도저도 아니면 우리 아빠마냥 아마 너는 절대로 배구가 늘지 않을거야 내가 운동할 때 그랬으니까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수업을 듣을 때도 혼자서 연습할 때도 언제나 느껴진다. 나는 배구를 진~~~짜 못한다. 처음 해보는 사람도 운동신경이 좀 있다면 곧잘 해내는 리시브도 나는 몇 주 째 이리저리 튕겨나가고 있고 3주 전엔 못하던 사람도 이제는 군더더기 없이 해내는 공격 스텝도 아직까지 못 밟고 있다.

가끔은 수업을 듣고 나서 하루 종일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체육관을 빌려서 연습도 해보고 영상도 열심히 찾아본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울해진다. 



수업을 듣다 보면 느껴진다. 저 친구는 10번 시도해서 8번은 코치의 '나이스!'를 받아내는구나 나는 10번 시도했을 때 2번 정도 '오케이'를 받네.

심지어 나보다도 늦게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훨씬 더 좋은 피드백을 자주 받을 때 

서브코치가 1:1로 나를 코칭하다가 그래요 이 정도면 그래도 충분합니다 같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할 때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면 그만두면 되잖아?

고작 취미로 운동하면서 대체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하는지? 누군가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싶어서 하고 어떤 사람은 하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데 나는 고민 90% 즐거움 10%의 비율을 왜 이렇게 꾸역꾸역 이어가는지? 

근데 나는 진짜로.. 잘하고 싶다. 

10번 중에 2번이어도 오케이를 받았을 때 기분이 좋고 

공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튀어나가다가도 한 번 제대로 팔에 맞으면 그 순간 너무 짜릿하다.




배구일지를 쓰면서도, 브런치에 배구를 배우는 것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고민했던 점은 하나였다.

나는 배구를 열심히 배우지만 이다지도 못하는데 글을 써도 될까.

결국엔 연습하다보니 이런 뚝딱이라도 짜잔 배구 평타는 친답니다 라던지

배구는 너무 재밌고 여러분 모두 배구 배우세요 라던지 이런 메세지를 전달하는 글을 써야하는 거 아닐까? 



그래도 그냥 이렇게 못하는데도 몇 달을 계속 이어서 배우는 사람이 있을 만큼 배구가 재밌구나 라고 누군가는 생각해줄 지도 모른다.

이 길의 끝에 그냥 포기하는 결과가 있더라도 저 사람은 배구가 정말 재밌었나보다 라고 생각해줄 수도 있다.

내가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배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배구가 재미있다.

그리고 다음주부터는 징징거리는 시간에 그냥 돈 좀 쓴다 생각하고 가까운 체육관을 빌려서 꾸준히 연습할 예정이다. 

안그래도 운동신경이 없는데 남들이랑 똑같은 시간만큼 들이고 비슷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고 + 그렇다고 그만두기엔 내가 징징거림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를 연습에 돌려보려고.  


매거진의 이전글 이래서 배구가 재밌었지 (09/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