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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May 29. 2018

동생의 숯불 치킨

청춘의 맛, 어른의 맛

8살 터울의 남동생이 오늘, 가게를 오픈했다. 꽤 오래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숯불 치킨 가게를 직접 인수한 거다. 제 손으로 직접 번 천만 원이 넘는 돈과, 소상공인 대출을 더해 가게를 받았다고 했다. 앞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던 넷째 이모와 부모님, 외삼촌이 오픈 전 대청소를 도와주셨다. 구산동의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어 위치도 좋고, 인수하기 전에 이미 자릴 잡은 가게였다. 무엇보다, 동생이 꽤 베테랑처럼 숯불 치킨을 요리하고, 주문을 받고, 직접 배달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분명 잘 해낼 것 같았다. 


다 지나고 나서야 말하는 거지만, 내 동생은 너무 별일 없었던 형 때문에 많은 오해와 억울한 대우를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늘 반장이나 부반장 따위의 직책을 맡았고, 고등학생 땐 전교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재수 없는 자랑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리 대단한 건 하나도 없었다. 반장, 부반장이야 하겠다고 나서는 애들이 얼마 없다 보니 손만 들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학생회 장마저도 출마 후보가 없어 단일후보로 출마해 거저 된 거였다. 


공부는 딱 보통 정도로만 했다. 아주 잘하지도, 아주 못하지도 않는 딱 보통. 타고난 기계치라 컴퓨터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축구에 미쳐서 틈만 나면 학교 복도, 교실, 운동장 할 것 없이 뛰어다녔다. 담배는 안 폈지만, 미리 늙어버린 얼굴 덕에 가끔 캔 맥주 정도는 사 마시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내 딴에는 사춘기도 겪고, 반항도 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 나는, 약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모범적인, 부모 속 썩이는 일 없는 그런 장남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 나 때문에 동생은 특별히 잘못하는 일 없이도 형과 비교당하며 지내왔다. 조금만 눈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너네 형은 안 그랬는데,”로 시작하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당했던 것이다. 엄마는 막내아들이 걱정돼서 하셨던 말씀이었고, 또 한편으론 엄마대로 지쳐있었던 거겠지만 그게 동생이 부당한 비교를 당해도 된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게 동생은 저 스스로 고민하고, 나름대로 자기 생활의 철칙이나 미래 계획을 세우는 어른의 모습을 갖추는 동안에도 늘 ‘철부지’ 꼬리표를 달고 지내야만 했다. 


그런 동생이, 오늘 자기 명의로 된 숯불 치킨 가게를 오픈했다. 메뉴를 요리하는 것 말고도 가게 운영에 필요한 정산과 절차를 해낼 줄 아는 능숙한 모습으로. 자기보다 족히 10살, 20살은 더 많은 주변 자영업 사장님들과 고민을 나누고, 친절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사장의 모습으로. 용돈 몇 푼을 바라듯,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고, 스스로 대출금을 갚아가며 자기 일을 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때마침 석가탄신일이라, 새벽 택배 일과 야간 과외를 모두 쉴 수 있어서, 자그마한 화분을 하나 사들고 여자 친구와 동생의 가게에 갔다. 동생이 만든 숯불 치킨과 새우튀김, 주먹밥을 먹었다. 미리 연락받아 다 알고 있었던 일인데도 직접 들러 가게를 보고, 가게 안에 있는 동생을 보는 일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뿌듯하고 고맙고 대견했다. 동생을 대견하다고 생각하다가, 겨우 내가 뭐라고 누가 누구를 대견해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잘난 것 하나 없는데도 형이랍시고 늘 비교의 대상으로 동생을 괴롭게 했던 기억이 아프게 떠올랐다. 나이 서른의 형은 아직도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모르고 사는데, 겨우 스물둘의 동생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 지난 기억들이 동생에게 더 죄스럽게 느껴졌다. 


본가에서 나와 부산에서 혼자 지낸다는 이유로, 나는 부모님이나 동생에게 소홀했다. 그 거리감이 오히려 내 생활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 나 하나 건사하기에도 마음이 바빴다. 부모님에게는 가끔 하는 안부 전화나 식사가 아들로서 하는 도리의 전부였고, 이제 같이 늙어가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동생과는 마음 터놓고 술 한 잔 거하게 기울여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내가 나만 챙기며 사는 동안 8살 터울의 동생은 부모님의 아들로, 이모들의 조카로, 한 가게의 사장으로, 제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어른으로 자리 잡았다. 


오픈 축하 자리를 끝내고 가게를 나오는데, 동생이 “행님, 여기 가게 입구 쪽에 행님 시 몇 편 붙여둘 거다. 알겠제?”라고 말했다. 내가 내 동생이었다면, 나는 형에게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다. 글쟁이랍시고 나이 서른에 제 밥벌이도 시원찮은 형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지 못했을 거다. 그런 형의 별 대단치도 않은 시 몇 편을, 자신이 일궈낸 가게 입구에 붙여줄 수 있는 그런 동생은 되지 못했을 거다. 부산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적어도 동생의 가게 입구에 붙여두기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글을 적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동생이 만들어 준 숯불 치킨의 맛은, 어른의 맛이었다.
 동생이 그동안 살아온, 어떤 시보다도 더 시적인,
스물둘 청춘의 맛이었다.
오픈 날, 햇살이 좋았다.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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