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소한 교양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는 상행과 달리 하행 에스컬레이터는 간격이 좁아서, 다들 일렬로 서서 폰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며 일행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내 앞으로는 허리가 굽고 키가 작은 할머니, 그 앞으로는 출근길인 듯한 남녀 3명, 그리고 제일 앞에는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2명이 서있었다. 특히 모녀 중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힐끔거렸는데, 하필이면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않던 나와 두어 번 눈이 마주쳐서 의도치 않게 그쪽을 주시하게 됐다. 제법 긴 에스컬레이터가 느릿느릿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의뭉스러운 그녀의 눈빛에 나도 괜히 경계심이 생겼다.
그 눈빛의 의중은 금세 드러났다. 그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며 다 쓴 샘플용 핸드크림 용기를 상, 하행 표시등이 켜지는 기둥에 턱 하니 올려두고(그러니까 버려두고) 갔다. 어차피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라면 개찰구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 굳이 왜? 부지런히 주위를 살폈던 걸 보면 누가 보지는 않을까 신경은 쓰였던 모양인데 어쨌거나 그녀는 몰상식한 방식으로 쓰레기를 무단 투기했다.
더욱 놀라운 건 모녀의 태연함이었는데, 중학생쯤은 되어 보이던 딸은 그런 엄마의 행동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팔짱을 끼고서 걸어갔다. 글쎄, 저 정도 나이라면 가정교육 운운하며 부모 탓만 하기엔 너무 크지 않나.
‘보고 배운 도둑질’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좋은 것만 배우는 존재는 아니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을 보라. 빠가야로와 Fuck You와 존나 씨발 같은 단어가 먼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오히려 저속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더 즉각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양 없는 행동이나 무식 또한 마찬가지다. 교양 있는 행동을 겪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양 없는 행동을 보고 배워서, 유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무식한 짓을 보고 배워서 사람이 비루해진다.
나라고 무슨 아주 교양 있고 유식한 인간인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지만, 모르고 살다가도 부끄러운 행동인 줄 알게 되면 고치려 노력하는 정도는 된다. 상황, 나이, 문화, 직책, 권위 따위를 변명으로 알면서도 무식하게 행동하기 시작하면 참 괜찮았던 사람이라도 너저분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