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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Mar 22. 2019

괴로움이라도

정성스러운 개소리를 적고 나면

사람들은 흔히 훌륭한 작품만이 고뇌와 번민 같은 정신적 피로를 동반한다고 오해한다. 졸작은 그에 걸맞은 무성의함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명작이건 졸작이건 진심을 다해 글을 써내는 동안 쏟는 고뇌와 번민의 총량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써낸 글이 명작일 때보다 졸작일 때, 글쓰기로 인한 피로는 극에 달한다. 상상해보라. 목과 허리가 뻐근하고, 눈은 침침하고, 멀미 같은 두통까지 참아내며 글을 마무리 지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건 발음 연습용으로도 쓰지 못할 문장들뿐이라면. 정성스러운 개소리만 가득하다면.


그런 점에서 저마다 최선을 다하는 글쓰기 노동자들은(나의 경우 글은 취미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한 작업이므로 활동이 아니라 노동이 마땅하다.) 결과물의 성과와는 무관하게 얼핏 비슷한 총량의 괴로움을 감당해내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대작가의 작품은 흉내 내지 못했지만 그의 괴로움이라도 흉내 내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 개운한 기분은 아니지만, 괴로움의 크기만큼 노력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게 글 짓는 자의 나날이란 보통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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