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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3. 2016

  TV와 영정사진

        돌리도 돌려 보아도,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겨우 스물다섯의 가을밤, 나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함께 술래잡기를 하던 친구들 중 한 명. 중학생 시절 주말마다 축구며 농구를 함께 했던 친구들 중 한 명. 네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고 바로 취직을 하는 동안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고, 그저 그런 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둘 인연의 갈랫길은 그렇게 조금씩 벌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아득해졌다. 


  그래, 사실 나는 너를 잊고 살았다. 2G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며 너의 연락처도 저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만났더라면, 놀라움과 어색함이 반가움을 압도했을 것이다. 서로의 과거를 더듬어보며 겨우 우리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근황을 묻고, 그리고 의미 없는 '다음에 한 잔 하자.'는 말을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건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슬프지 않을 줄 알았다. 급히 택시를 타고 간 너의 빈소는 이미 어머니의 통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는 너와 비슷한 처지로 연락이 뜸했던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 나는 사실, 너의 영정사진을 보기 전까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절을 하고 너의 얼굴을 보는데, 너는 너무나 그대로였다. 내 옆에는 아랫입술을 깨문 아버지와, 차마 참지 못하고 통곡하는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께서 바닥을 치며 쉰 소리로 통곡하실 때마다 네 사진 옆의 촛불들이 헐떡이는 듯했다. 


  나는 조금 눈물이 났다. 그러나 그것을 감히 너에 대한 애도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너의 명복을 온 마음으로 빌어줄 만큼의 친구는 못되었다. 그리고 나의 애도는 겨우 몇 시간에 불과했다. 나는 다시 나의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았다. 그러고도 나는 여전히 사람이다. 사람이란 때로 이렇게 무지막지하다.


   


                                                                                                                                                                                                                                                                                                                                                           TV 앞에서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수육 몇 점과 통곡에 헐떡이는 촛불을 떼어먹었습니다 이십 대의 자식을 먼저 보낸 이순(耳順)의 부모는 영정사진 쪽으로 몸이 굳었습니다 적나라한 슬픔의 나체가 민망해 켠 스마트폰 화면, 연예인 B양 교통사고로 즉사, 기사가 떠있더군요 어느 하루 세상에 저 혼자 태어나는 날 없듯 저 혼자 떠나는 날도 없나 봅니다 잔에 담긴 소주가 문득 비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와서, 하릴없이 TV나 켰지요


  전파는 저승까지 송수신되는 걸까요, 활짝 웃는 B양의 얼굴이 네모난 TV 화면에 뜨자 좁은 내 방은 빈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앉은 속옷 차림이 죄스럽더군요 B양이 두고두고 재방송될 것을 생각하니, 그건 너무하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영정사진을 방에 두고 살아야 한다니요 망자의 웃음이 내 삶에 스민다니요 께름칙한 기분에 채널을 돌렸습니다만, 돌리고, 돌려 봐도, 아무도 돌아올 수는 없었지요


나는 하릴없이 TV나 켜고, 또 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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