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행간

2020年 8月 5日의 기록

by 김경빈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구독자 분들께 이메일로 연재했던
일간에세이를 브런치에 공개 연재합니다.
1년 전 이맘때의 제 기록들을 통해
1년 전 독자분들의 나날을
되짚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의 침묵

막 스물이 되었을 무렵, 나는 ‘말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알아줘야지’라는 말이 싫었다. 그건 용케 알아차린 쪽이 해줄 수 있는 말이지, 말하지 않고서 알아주길 바라는 쪽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기 편한 대로 말을 뱉거나 삼키며 상대방이 마음을 몰라줘 서운하다는 태도는 유아적으로 보였다.


그러다 11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었고 가끔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는 순간이 참 감사하고 따뜻했다. 그건 추측이나 노력이 아니라 관심과 배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주변 미혼 친구들의 다사다난한 연애사를 들으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말로 해야 하는 일과 말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배려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 결혼 준비 과정을 의논하고 함께 살 집을 찾아보는 것처럼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조율해야 할 사안은 말로 하는 것이 원활하고 평화롭다. 알량한 자존심에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면서 입을 다물어봤자 일은 지연되고 감정만 소모된다. 반면 오후의 비 소식에 미리 우산을 챙겨주는 것, 더운 여름날 먼저 귀가한 사람이 뒤늦게 귀가할 사람을 위해 에어컨을 틀어 쾌적한 온도를 준비해두는 것, 겨울밤 유난히 웅크린 자세로 잠든 사람의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는 것 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배려다. 말로 해야 할 일에 입을 다물면 오해가 쌓이고, 말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배려를 소홀히 하면 서운함이 쌓인다.


지난 세월 반복된 생활패턴은 우리 부부의 빅데이터로 쌓였다. 아내인 아름이는 내 엉덩이만 보고도 큰 볼일을 보고 싶은 상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농담조인데 공교롭게도 화장실을 가볼까 싶을 때 그런 얘길 들으면 수치스러우면서도 놀랍다. 나는 아름이가 특정 상황에서 떠올리는 노래를 미리 알아맞힐 수 있다. 반가운 사람과 헤어질 때에는 015B의 ‘이젠 안녕’,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면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바람 부는 흐린 날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맑은 날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자려고 누웠는데 왠지 그날따라 옆에 누운 내가 마음에 들면 노사연의 ‘만남’이다. 가끔 최신곡으로 업데이트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플레이리스트로 돌아온다.


그 밖에도 음식의 간이나 굽기, 그날의 옷차림에 따라 고를 신발처럼 사소한 취향도 눈치껏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히려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뉘앙스를 감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사랑인 것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 일은 사랑이 깊어가는 방증이 된다.

말하지 않는 순간을 침묵이라고 한다. 물론 온전히 무(無)인 침묵은 없다. 눈빛이나 표정, 손짓처럼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상황을 설명한다. 따라서 누군가의 침묵을 살펴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보다 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그의 눈빛과 표정, 손짓, 지금 이 순간을 둘러싼 과거와 미래까지 봐야 한다. 침묵의 언어는 흩뿌려진 자음 모음과 같아서 그 조각들을 유심히 살피며 읽어내야 한다.


글의 행간


나는 말의 침묵뿐만 아니라 글의 행간을 잘 다루는 작가이고 싶다. 행간은 사소하게는 쉼표나 마침표와 같은 문장 부호를 의미하고, 거창하게는 문장에 숨겨진 비유와 상징을 의미한다. 특히 시를 쓸 때 직접적인 비유법이나 묘사를 활용하기보다는 감정과 상황을 행간에 담으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스물에 썼던 시보다 서른을 넘겨 쓴 시들이 확연히 짧고 담백하다. 하고 싶은 말들을 온통 글로 적어냈던 예전의 시에는 여운이 없었다. 맵고 짜고 단 문장들은 요리가 아니라 고춧가루와 소금과 설탕을 그대로 담아낸 조미료 같았다.


여전히 내가 추구하는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엔 슬쩍 읽으면 슴슴한데 곱씹으면 여운의 맛이 느껴지는 요리 같은 시를 쓰려 노력한다. 슬프다는 단어 없이 슬픔을, 그립다는 단어 없이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말의 침묵처럼 글의 행간에도 눈빛과 표정, 손짓, 과거와 미래의 상황을 담는다.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어 슬프다’는 문장 대신 ‘어제 엄마가 봐둔 장거리들은/ 영영 저녁이 되지 못합니다’라고 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는 문장 대신 ‘웃으려다 말거나/ 억지로 웃는 날들’이라고 쓴다. ‘너무 힘들지만 죽을 용기는 나지 않는다’는 문장 대신 ‘파도에 발을 적시는 사람들/ 나만 주저주저하는 중입니다’ 라고만 쓴다. 그렇게 말 대신 침묵을, 글 대신 행간을 채워서 이런 시를 썼다.

<주저>

나선 길을 무르는 파도는
본 적이 없습니다

차곡차곡 쌓인 나이가 이토록
와르르 무너질 줄은 몰랐고

어제 엄마가 봐둔 장거리들은
영영 저녁이 되지 못합니다

왼쪽 입꼬리에 서러운 것들이 고여
웃을 때마다 아래로 처집니다

웃으려다 말거나
억지로 웃는 날들

파도에 발을 적시는 사람들
나만 주저주저하는 중입니다


엄지혜 작가의 책 『태도의 말들』에 실린 사회학자 엄기호의 말을 다시 읽는다. “말하는 걸 듣는 건 수비만 하는 것이다. 고통은 침묵으로 표현될 때가 많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 말조차 하지 않는 사랑은 불완전하고, 말만으로는 사랑이 완전해질 수도 없다. 상처와 고통까지 보듬으려면 침묵을 살피고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 상처와 고통까지 온전히 문장에 담아내려면 오히려 글의 행간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듯이. 새삼 글쓰기의 시간이 이토록 묵묵한 이유를 실감한다.


2020年 8月 5日,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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