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이후의 면식

2020年 8月 4日의 기록

by 김경빈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구독자 분들께 이메일로 연재했던
일간에세이를 브런치에 공개 연재합니다.
1년 전 이맘때의 제 기록들을 통해
1년 전 독자분들의 나날을
되짚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면식 예찬

나는 면 요리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해 어떤 요리든 면이 들어가면 좋다. 면식에 대한 나의 애정은 재료와 모양과 식감을 불문한다. 꼬들꼬들한 건 꼬들꼬들한 대로, 푹 퍼진 건 퍼진 대로 맛있다.


주말의 끼니이자 매일의 야식인 라면부터 면발이 얇은 잔치 국수, 비빔국수와 오동통한 식감의 우동까지 모두 좋다. 짜파구리나 불닭게티처럼 서로 다른 라면을 섞는 것도 즐긴다. 여름엔 시원한 밀면과 냉면, 씹는 맛이 즐거운 매콤새콤한 쫄면이 수시로 당긴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뜨끈하고 개운한 칼국수가, 든든한 한 끼가 필요할 땐 진한 국물의 일본식 라멘이나 고기 듬뿍 베트남 쌀국수가 딱 좋다. 설렁탕 가게에선 입요기로 나오는 소면을 한 번쯤 더 리필해 말아먹기도 한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짜장면과 짬뽕은 마찬가지로 기름진 탕수육과 먹어도 맛있다. 야채와 고기 육수가 진하게 밴 샤브샤브 국물에 칼국수 면을 말아먹는 건 당연한 수순. 빨간 닭갈비 양념에 우동 사리를 추가하지 않으면 영 아쉽고, 찜닭이나 불고기 전골을 먹을 땐 고기보다 당면에 먼저 손이 간다. 같은 소스라면 아무래도 리소토보단 파스타다.


그중에서도 오랜 세월 질리지 않고 늘 맛있는 스테디셀러는 바로 라면이다. 라면을 먹는 상상만으로도 혀 밑에 침이 고인다. 면을 휘휘 저어 국물의 향을 먼저 음미하고 한입에 들어갈 만큼 면을 건져 후후 분다. 개인적으로 면을 끊어 먹는 걸 싫어해서 한 번 건진 면은 그대로 흡입한다. 입안 가득 들어찬 양에 비해 씹는 횟수는 몇 번 되지 않는다. 면발의 생김새처럼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씹던 면을 머금은 채로 국물을 들이켜 한 번에 꿀꺽 삼킬 때도 있어서다. 적고 보니 아무래도 면식을 싫어할 이유는 찾기 힘들다. 내일은 라면을 먹어야겠다.


라면의 손맛

라면은 간단한 정량의 조리법을 갖춘 인스턴트 음식이다. 누구나 거의 비슷한 방법과 비슷한 용량으로 라면을 조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라면만큼 끓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음식도 드물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주말마다 가까운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엄마가 7남매 중 맏이여서 여러 이모와 외삼촌들이 나를 예뻐하며 챙긴 덕이었다. 토요일엔 이모들과 밤늦게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보며 과자를 먹을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8시도 전에 일어나 TV에서 하는 <디즈니 만화 동산>을 보고 있으면, 뒤이어 일어난 이모나 외삼촌이 라면을 끓였다. 셋째 이모나 막내 이모는 비교적 평범한 라면에 계란을 띄우고 대파나 양파를 썰어 넣었다. 가끔 둘째 이모가 라면을 끓일 땐 김치나 고춧가루를 넣어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났다. 막내 외삼촌이 끓인 라면은 계란 두 개 중 하나는 자작한 국물에 풀고, 하나는 반숙으로 익혀 면과 함께 터뜨려 먹을 수 있었다.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 라면의 모양새와 맛이 모두 달랐다. (물론 누가 끓이든 맛있는 건 똑같았다.)


특히 엄마의 라면은 늘 다채롭고 풍성했다. 절대 라면만 끓이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란만 들어가는 법도 거의 없었다. 계란, 대파, 양파, 다진 마늘 정도는 기본 옵션이었고 떡국 떡이나 소시지, 햄이 추가됐다. 시원한 국물이 당길 때는 신김치와 콩나물, 진한 국물이 당길 때는 된장과 고기가 들어갔다. 각자 라면을 3개씩 해치우는 먹성 좋은 두 아들과 유난히 손이 큰 엄마의 조합은 늘 플러스알파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분명 뜯은 라면 봉지는 3개인데 완성된 양은 5인분, 6인분이었고 나와 동생은 그걸 다 먹어 치웠다.


어릴 적 기억 중 드문드문 아버지의 요리도 남아있다. 보통은 찌개나 볶음밥 종류였고 가끔 라면도 끓여주셨다. 아버지가 낸 요리들은 뭐랄까, 씹다 보면 딱 ‘무슨 맛’이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맛들이 들쑥날쑥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노력해봐도 아버지의 라면은 모양새가 어땠는지, 무엇이 들어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나 확실한 건 국물을 싹싹 비울 만큼 맛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실패 없는 맛’인 라면 덕이기도 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더한 손맛 덕분이기도 했다.


좋아할수록 천천히

지난 30여 년, 라면의 역사를 통해 내게도 몇 가지 라면 레시피가 생겼다. 개운하고 칼칼한 해장라면, 찌개 못지않은 된장라면, 든든한 고기라면, 깔끔한 야채라면, 부드럽고 짭짤한 쿠지라이식 라면, 꾸덕꾸덕한 치즈라면 등등. 뻔한 조리법에 고추기름이나 참기름, 설탕과 후추로 맛을 더한다. 아내와 처제는 나더러 라면도 잘 끓인다며 칭찬을 한다. 칭찬을 들으면 더 맛있는 라면을 끓이고 싶은 의지가 샘솟는다. 어쩌면 최고의 조미료, 최고의 레시피는 먹는 이들의 칭찬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예전만큼 면식을 편히 즐기지 못한다. 원래도 말썽이었던 위가 서른을 넘기며 더 약해졌다. 스물엔 세 끼 정도 라면을 먹어야 쓰렸던 속이, 이젠 한 끼만 급하게 먹어도 금세 쓰리고 더부룩하다. 특히 야식으로 라면을 먹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다가도 신물이 올라와 잠을 깨기 일쑤다. 라면이 아닌 다른 면 요리를 먹어도 마찬가지다. 20대 중반부터 노화가 시작된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면 요리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밤이면 새삼 서른을 넘겼다는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단호히 말하건대 면 요리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미련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편식이 심한 내가(심지어 편식을 주제로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이다.) 면 요리까지 먹지 못한다면 도대체 뭘 먹는단 말인가. 단돈 2천 원에 두 사람이 행복해지는 라면의 소박한 기쁨, 이것이야말로 생활밀착형 소확행이 아닌가. 확실한 행복을 저버리는 것만큼 확실한 불행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면 요리를 조금 더 천천히 먹기로 했다. 자주 먹지 않는 대신 더 맛있고 든든하게 먹기로 했다. 라면을 끓일 땐 야채와 재료를 넉넉히 넣어 영양이 풍부한 한 끼를 완성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늘 내게 유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서른이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약간의 괴로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작정 좋아하는 걸 하고, 먹고, 즐겼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독서나 게임, 걸음이 휘청이는 만취, 수시로 카드를 긁는 충동구매의 유혹까지. 하지만 서른 이후에도 무작정 그럴 수는 없다. 내게 무익한 즐거움, 어쩌면 내게 유해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적당한 속도와 빈도와 정도가 필요하다. 좋아할수록 천천히, 찬찬히 살피며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걸 두고 굳이 ‘서른 이후의 면식’이라고 거창하게 불러본다. 내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라면을 하루나 이틀쯤 미뤄야겠다. 그럼 더 맛있고 즐거운 면식이 될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2020年 8月 4日, 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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