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

2020年 8月 11日의 기록

by 김경빈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구독자 분들께 이메일로 연재했던
일간에세이를 브런치에 공개 연재합니다.
1년 전 이맘때의 제 기록들을 통해
1년 전 독자분들의 나날을
되짚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쓰기는 들이는 품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 적은 일 중 하나다. 누군가는 자본금 한 푼 없이 글자만 뚝딱뚝딱 채워서 돈 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자만 뚝딱뚝딱 채운’ 글에는 아무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글밥 벌어먹기 시작한 후로 내가 쓴 글이 족히 몇백 편은 될 텐데, 그 정도로는 집도 차도 살 수가 없다. 작가로서 글값과 말값을 높이지 못한 내 탓이 크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참 박하다 싶다.


밥벌이를 위한 나의 글쓰기는 바쁘고 고단했다. 투잡이나 쓰리잡은 기본 옵션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엔 반년 넘게 포잡을 뛰었다. 학원 강사, 라디오 작가, 프리랜서 에디터, 초등학생 글짓기 과외까지. 투잡(two job)을 우리말로 순화하면 겹벌이라는데 그럼 쓰리잡은 ‘겹겹벌이’, 포잡은 ‘겹겹겹벌이’라고 해야 하나?


당시 내 일상은 이랬다. 오후 2시까지 라디오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4시부터 생방송이라 미리 대본과 음악 파일 정리를 끝내야 했다. 프로그램의 작가가 나 하나뿐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메인 작가였는데, DJ였던 당시 유정임 제작국장님께 대본 컨펌을 받아야 했으니, 다시 따지고 보면 서브 작가이기도 했다. 생방송 전까지 섭외, 취재 요청, 청취자 상품 발송 등 대본 작성 외의 잡무도 처리해야 했다.


방송 후 뒷정리를 끝내면 저녁 7시.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 8시까지 초등학생 글짓기 과외를 하러 갔고, 나머지 평일엔 곧바로 재수 학원으로 출근해 자정께까지 수능 국어 해설과 상담을 맡았다. 자정 넘어 귀가하면 일주일에 두 번 기고하는 프리랜서 에디터 원고와 다음날 라디오 대본을 작성했다. 새벽 3시나 4시쯤 잠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적고 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다 싶기도 한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학원에선 원생들의 이름으로 응원 메시지를 담은 이름시를 적고, 교육 관련 칼럼을 작성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원생들을 취재해 학원 홍보 콘텐츠를 만들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화법과 작문, 문법, 문학, 비문학 파트별로 문제 분석글을 적었다. 이후 자기소개서 컨설턴트를 겸하면서 약 4개월 동안 마흔 명이 넘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야 했다. 포잡을 했던 기간의 평균 수면시간은 겨우 4시간 남짓이었다.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면서 체중은 거의 10kg이 늘었다. 그 와중에도 떠오른 생각들이 있으면 시나 에세이를 적었으니, 참 징하게도 글을 써댔다.


그 시절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얇은 옷이라도 4겹을 껴입으면 따뜻하다지만, 포잡이 생활을 따뜻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 제대로 먹고 자고 쉬지 않으면서 일에만 매달리면 몸도 마음도 망가진다는 것. 특히, 아무리 사랑하는 일이라도 무리하면 체력과 심력이 동나고 만다는 것.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과 내가 사랑하는 일. 체력과 심력이 필요한 모든 일에는 저마다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 하기 싫은 일의 총량은 얼마 되지 않아서 금세 지치고, 사랑하는 일의 총량은 몇 배나 더 많아서 웬만해선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쉬지 않고 몰아붙이며, 한계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리해서 계속하다 보면 결국 다치고 지치는 순간이 온다. 흔히들 아는 번아웃 증후군이다.

번아웃 증후군의 가장 치명적인 무서움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이 아니라 다신 그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되는 환멸과 체념에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끝내 그 일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3개월간 판교의 카카오메이커스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지난해 5월부터 콘텐츠 에디터로 작업하다가 사무실로 출근해 본격적인 카피라이터 업무 전반을 해내야 했다. 단 하나의 직업이었는데도 포잡을 뛰었던 4년 전 못지않은 양의 글을 매일 썼다. 특히 짧은 분량에 제품의 정보를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글은 무작정 길게 쓰는 글보다 훨씬 품이 많이 들었다. 점점 지쳐가는 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선임 마일로는(직급 없이 영어 이름을 썼다. 내 이름은 바트였다.) 이렇게 말했다.


“바트, 잘하고 있어요. 난 다른 것보다도 바트가 일에 치여서 글쓰기가 싫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돼요. 바트는 글 쓰는 일을 사랑하니까 계속 그 마음으로 일하면 좋겠어요.”


9년간 기자 생활을 하고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카피라이터로도 승승장구하는 마일로의 비결이 바로 그 말에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해내는 것. 그러기 위해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의 수준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태도로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몰아붙여선 안 된다. 사랑하는 일일수록 몸도 마음도 다치거나 지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일간 에세이 <뒤를 보며 걷는 시간>을 시작한 후로 나는 부지런히 글을 쓴다. 매일 에세이 한 편과 매주 고정적인 청탁 원고, 매월 한두 편의 칼럼 기고와 내년 출간 예정인 에세이의 원고까지 더하면 앞으로도 나의 글쓰기는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특히 일간 에세이는 미리 원고를 쌓아두고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매일 한 편씩 써내고 있다. 시작 전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선불로 구독료를 받아놓고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매일매일이 마감인 글쓰기는 처음이어서.

요즘 나는 최선과 정성을 다해 글을 쓴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진 않는다. 글이 안 써지면 미련 없이 노트북을 덮고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소파에 누워 뒹군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시간이 되면 헬스장으로 간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잠을 자고, 볼 수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다. 그렇게 쓴 글들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며 쓴 글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사랑하는 일을 오래오래 사랑하기 위한 연습.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한수희의 에세이 제목처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사랑하고 싶다. 나의 글쓰기도 나의 사람들도.

2020年 8月 11日, 火

매거진의 이전글살면서 하나쯤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