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하나쯤 꾸준히

2020年 8月 10日의 기록

by 김경빈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구독자 분들께 이메일로 연재했던
일간에세이를 브런치에 공개 연재합니다.
1년 전 이맘때의 제 기록들을 통해
1년 전 독자분들의 나날을
되짚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수영 강습을 등록하면 모든 영법을 마스터하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선명한 복근을 드러내는 사람들. 취미를 특기로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유려한 영법이나 매끈한 몸매보다도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꾸준함이 존경스럽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이 보내준 여러 예체능 학원의 진도를 끝까지 마친 적이 없는, 이력 단절의 아이콘이었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와 미술 학원을 잠깐, 몇 개월 정도 다녔다. 피아노 학원에선 그날 배운 곡을 10번, 20번씩 연습하고 그 횟수만큼 동그라미를 채워야 했는데, 나는 다른 친구들의 피아노 소리에 은근슬쩍 묻어가며 건반은 치지 않고 동그라미만 채웠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초청해 찰흙 작품을 전시했을 때 공룡, 비행기, 꽃 등등 다양한 작품 사이에 나는 ‘공’이라는 제목으로 찰흙을 동그랗게 빚어두기도 했다. 지금은 ‘도’ 음계 건반을 겨우 기억하고 5살 조카보다도 그림을 못 그리는 편이다.


꽤 오래 다녔던 국술원에선 검은띠 승단 심사 비용이 아까워서 품띠인 상태로 몇 개월을 더 다니다 이력이 끝났다. 태권도 도장은 심사도 제대로 보지 않고 노란띠를 주길래 ‘이건 공정하지 못해’라는 생각에 한 달 만에 관뒀다. (친구 아버지가 관장님이셨다.) 중학생 땐 방과 후 활동으로 유도를 배웠는데 또래에 비해 힘이 셌던 탓에 기술은 연마하지 않고 친구들을 휙휙 내던지기만 하다가 끝이 났다.


그나마 서른을 넘길 때까지 꾸준히 한 거라곤 축구와 노래 정도인데 <각자의 최선으로> 글에서 밝혔듯 ‘취미의 미덕은 즐거움’이라는 신조로 딱 즐거울 만큼만 노력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태 끝장을 본 일들이 거의 없다. 그 덕에 나는 즐거운 취미를 몇 가지 건졌지만 특출난 특기는 부족하다. 학창 시절에도 학생부에 취미를 적기는 쉬운데 늘 특기가 궁했다. 어쩔 수 없이 만만한 독서나 글짓기 따위를 적어냈다. 그게 진짜 내 특기와 직업이 될 줄은 모르고.


가끔은 취미가 특기로 이어지지 못한 상황이 아쉽기도 하다. 만약 피아노를 더 열심히 배워서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 만약 기본기만이라도 잘 익혀서 글과 함께 실을 웹툰을 그릴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국술원 검은띠를 따서 단증이라도 있었다면. 물론 지금 와선 별 의미 없는 아쉬움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취미를 특기로, 특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 군대 동기인 동열이. 그는 군 복무 시절 유난히 세심하고 배려 깊은 친구였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후임들에게도 함부로 대하거나 선을 넘지 않았다. 정신없는 이등병 기간이 끝나고 일병도 조금 지나자 동열이는 2가지를 시작했다. 한국사 공부와 커피 공부. 한국사는 취업 스펙을 위한 거라고 쳐도 커피 공부는 좀 생뚱맞았다. 동열이가 커피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도 없었고, 휴가 복귀 때 들고 온 커피 책이 너무나 두껍고 거창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짓궂은 동기 몇은 동열이에게 ‘바리스타 킴’이라며 악의 없는 조롱을 던졌지만 그럴 때마다 동열이는 악의 없이 웃어 보이며 하던 공부를 마저 했다. 그 시절의 기억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정작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닌 건 동열이가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커피 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카페 창업에 관한 실무적인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카페를 차린 행복한 상상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반면에 동열이는 자신의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묵묵히 하려던 일들을 해냈다.


제대한 뒤 1년에 겨우 몇 번 카카오톡을 할 만큼 연락이 뜸해졌다. 어느 날엔 SNS에 선명한 복근을 뽐내며 운동하는 영상이 올라왔고, 어느 날엔 스타벅스에서 일한다고 했다. 조금 더 지나자 개인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고 했고, 서른이 되던 2018년엔 울산에 카페를 차렸다고 했다. 2009년 4월에 훈련소에서 처음 만난 동열이는 꼬박 9년 동안 이론과 실무를 겸해 꾸준히 커피 공부를 하다가 기어코 자기 카페를 차렸다. 그 카페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탄탄히 자리 잡은 것 같다. 카페를 차리겠다는 나의 허황된 목표는 금세 사라졌고, 지금 나는 동네 카페를 떠돌며 글을 써 생계를 꾸린다.


‘살면서 하나쯤 꾸준히’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무엇을 꾸준히 했나 생각해본다. 진부하고 심심하게도 글쓰기뿐이다. 취미였다가 특기가 되고 직업이 된 글쓰기.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가끔은 수지맞지 않는 글을 쓰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즐거움 이상의 성취감과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취미의 미덕이 즐거움이라면 특기의 미덕은 성취감이 아닐까. 취미가 ‘한다’ 정도의 느낌이라면 특기는 ‘해낸다. 그것도 잘 해낸다.’ 정도의 느낌이다. 하는 것과 해내는 것의 성취감은 확연히 다르다.


지난 7월 이후로 동열이 카페의 SNS 소식이 뜸하다. 코로나19 사태와 폭우, 폭염이 이어졌던 탓에 괜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누군가의 꾸준함이 타의로 중단되는 건 쓸쓸한 일이다. 살면서 하나쯤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고, 뜻밖에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하나쯤의 꾸준함을 잃지 않고 살아내면 좋겠다.

나의 글쓰기도 동열이의 커피도.


* 동열이의 카페는 smash coffee다. 인스타그램은 @smash_coffee

울산 중구의 울산중앙여자고등학교 근처에 있다.


2020年 8月 10日, 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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