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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단면을 가지런히 수습하는 사람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삶

by 김경빈

아날로그(Analog)의 정의는 ‘어떤 수치를 길이, 각도처럼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디지털(Digital)은 ‘연속적 실수가 아닌, 특정한 최소 단위를 갖는 불연속적인 수치를 이용하여 처리하는 방법’을 뜻한다. 즉, 두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다. 그래서 아날로그 시계는 시곗바늘이 연속적으로 이동하며 시간을 표시하는 반면, 디지털 시계는 숫자판에서 해당 시간만 불연속적으로 표시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때의 '아날로그'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 첨단의 기기나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아날로그적'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것,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태도로 연결되어 때로는 고집스럽고 고루한 성향을 비꼬는 표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세상을 연속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진정한 '아날로그적 속성'과는 무관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은 예외 없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시계의 숫자가 5였다가 6으로 바뀌듯이, 갑작스럽게 한 생명이 태어나지는 않는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몇 년쯤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가, 문득 중학생이 되어 등장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게임 속 버튼을 클릭하기 전과 후의 화면처럼 불연속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 것이다. 심지어 '첫눈에 반하는 일'조차도, 그 찰나의 순간에도 물에 잉크가 퍼지듯 연속적인 과정을 거쳐 마음은 서로에게 물든다. 우리는 그렇게 매 순간을 아날로그적으로 살아내고 있다.




인연의 시작이 아날로그적이었다면, 인연의 끝맺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 애인과는 헤어지고, 학교를 졸업한 뒤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이곳저곳 직장을 옮기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전 직장 동료와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없었다.

그 모든 이별의 순간들은 서서히 이뤄졌다. 어떤 이별은 계절이 떠나듯이 특별한 각오 없이 이뤄져서,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고도 새로운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꺼내 입게 됐다. 또 어떤 이별은 작심하고 헤어지잔 말을 하고 난 뒤로도, 존재에 물든 서로를 지워내기 위해 여러 날이 필요했다. 물든 자리는 선명한 장면이었다가 흐린 얼룩으로, 기어코 그믐밤의 그림자처럼 분간이 어려운 흔적으로 서서히 농도를 잃어갔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과정이었다.

이별을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일'로 본다면 모든 이별에는 나름의 단면이 존재한다. 시간 지나 돌이켜 본 이별의 단면은 모두 제각각의 형태였다. 힘주어 억지로 찢어발긴 듯한 단면, 불에 그을린 듯 흉터가 남은 단면, 머뭇거리며 자르다가 말기를 반복하느라 너저분해진 단면까지. 가지런한 이별의 단면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는데, 그건 모두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서로의 행복만을 온전히 기원한 '다정한 이별의 단면'이었다.




물론 삶에 있어 이별이라는 게 꼭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별은 '인연의 끈을 한없이 길게 늘이는 일'이기도 했다. 영영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과 몇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을 때가 그랬다.

대학 졸업 직후, 3년 동안 독학 재수 학원에서 국어 담당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독학 재수 학원은 자습을 기본으로 하되 각 과목 담당 선생님이 학습 계획을 점검하고, 간단한 수업이나 질의응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나는 새벽 6시 오픈부터 밤 11시 마감까지 상주하는 일종의 매니저이기도 해서, 수업 외에도 많은 시간을 재수생들과 보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옥상을 산책했다. 국어와 관련 없는 여러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부모님과의 불화, 애인과의 이별, 대학에 입학한 친구에 대한 부러움,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까지,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몇몇 재수생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내게 털어놨다.

J는 근무 첫해에 만난 여학생으로, 우직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체육교육과를 희망하던 J는 저녁 시간마다 근처 체대 입시 학원에 다녀와 공부를 이어갔고,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건물 옥상에서 따로 체력 운동을 할 만큼 성실했다. 그런 J를 강사로서 대견하게 여기긴 했으나, 그렇다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던 다른 학생들에 비해 J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학생 중 하나였다.

수능이 끝나고도 연락이 오는 학생들은 두 부류 중 하나였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한껏 멋을 부린 모습으로 찾아오거나, 다시 시작될 1년의 수험 생활을 위해 암울한 표정으로 찾아오거나. 체육교육과 대신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된 J는 어느 쪽도 아니었는데도 일부러 학원에 찾아와 살갑게 인사를 했다. 받은 것보다 더 베풀 줄 아는, 그런 학생이었다.




독학 재수 학원 근무를 끝낸 이후로 나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굳이 '전전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커리어를 쌓기 위한 주도적인 이직이 아니라 방황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작가, 택배 배송 사원, 카피라이터, 입시 컨설턴트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흘러 서른도 중반에 이를 즈음, J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신을 기억할지 모르겠다며, 많이 늦었지만 결혼을 축하한다며, 선생님이 출간하신 책을 여러 번 읽고 있다며, J는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의 예의 바르고 싹싹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신기했던 건, 답장을 적는 내 마음에도 어색함이나 당황스러움보다는 반가움이 먼저 앞섰다는 점이다. 정작 학생과 강사로 매일 만날 땐 서로 대화를 나눈 기억이 많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 나누는 카톡이 더 편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서로 시간을 맞춰 커피도 마셨다. 스타일이 달라졌어도 예전의 눈빛과 태도는 여전했다. J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이었지만, 대화의 내용은 더 이상 국어 문법이나 시조의 형식 따위가 아니었다. J의 연애사와 간호사로서의 고됨과 보람, 돈벌이의 고민과 계획까지. J와 나는 어엿한 사회인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대화를 나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는 자꾸만 J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들처럼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6년 전, 그 학원에서 J를 포함한 학생들과 이별하며 나는 '인연의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눌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 J와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인연의 끈을 한없이 길게 늘이는 이별'도 있음을 실감했다. 그 길고도 먼 인연의 끈을 더듬어 다시 연락을 준 J에게 새삼 고마웠다.




어떤 이별을 직면했을 때,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이별'인지 '인연의 끈을 한없이 늘이는 이별'인지 알 도리는 없다. 이별의 표정은 늘 날카롭고 서글플 뿐이니까.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별의 단면을 마주하며 영영 끊어진 인연의 끈을 확인하게 된다. 심지어 누군가는 J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끊어진 줄로만 알았던 인연의 끈을, 길게 늘어진 그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렸다가 건네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별 앞에 겸손하고 사려 깊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처럼 이별도 아날로그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헤어지자는 다짐으로는 완전히 잊을 수 없고, 헤어지자는 말로는 온전히 헤어질 수 없다. 그러니 다시 볼 사이가 아니라는 오만함으로 상대방을 홀대하기보다는, 언제든 다시 만나더라도 웃을 수 있는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 한다.

J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속으로 담담히 되뇌었다. 나도 J처럼 이별의 단면을 가지런하게 수습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쥐고 있던 인연의 끈을 다시 건넬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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